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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09-25 오전 8: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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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 / 황여정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2-06 오전 9:32:56






묵언

                 황여정

 

 

철 지난 연밥이

연지에서 묵언 수행 중이다

 

나는 꽃에 대한 기억을 불러

이 겨울의 적막을 잠시 흔들어 본다

 

떠나가 버린 것에 대한 예의는

생각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더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리라

 

무성하던 푸름, 젊음이 지난 자리

한때는 모두가 꽃의 계절을 누렸을 그때

설핏한 기억이 강물처럼 흐른다

 

마른 꽃대궁들

저마다 홀로 견디는 연지

초록이 잠든 자리는 외롭지 않은 것이 없다

 

시집 저녁 안부(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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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오늘은 며칠 전 나온 따끈따끈한 황여정님의 시집 저녁 안부(2021) 중 첫수인 묵언이라는 시를 음미해 봅니다. 시의 화자는 어느 날 마른 꽃대궁들만이 저마다 홀로 견디는 연지를 찾았습니다. 아마 시적인 분위기로 봐서 연잎도 연꽃도 연밥도 떠난 자리 오로지 마른 꽃대궁들만이 적막을 불러일으키는 겨울 연지를 홀로 산책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언젠가 시의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 연지를 돌면서 무성한 잎에 대해 화려한 연꽃에 대해 웃음꽃을 피웠겠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이제 여기에 없습니다. 이 겨울의 적막을 혼자 견디기가 힘들어 그는 꽃에 대한 기억을 불러/이 겨울의 적막을 잠시/흔들어봅니다. 적막으로 이끄는 마른 꽃대궁을 통해 지난여름 화려한 연꽃을 불러오자 자연스레 따라온 것은 떠나가 버린 것에 대한 옛 추억입니다. 이미 떠나간 사람은 이곳에 없지만 시의 화자는 마른 꽃대궁을 보고 연꽃을 생각하듯 떠난 자리에서 떠난 이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주기로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떠나가 버린 것에 대한 예의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삶의 한 방식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진정한 사랑의 길일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추억이 빠져나가면 종국엔 무엇이 남을까요? 누구나 봄이 있었고, 누구나 푸른 여름이 있었겠지요. ‘한때는 모두가 꽃의 계절을 누렸을 그때마저 사라진다면 허공을 나는 정처 없는 빈 비닐봉지와 무엇이 다를까요?

 

나희덕 시인은 사라진 손바닥에서 이 시에서와 같이 겨울 연못의 풍경을 노래하였습니다. 연꽃과 연잎들은 사라졌지만 거꾸로 처박힌 꽃대궁들을 통해 떨어진 연밥을 주워 다시 심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시상은 다르지만 황여정 시인 역시 마른 꽃대궁들이 허리가 꺾인 채 머리를 박은 채 제 자리를 저렇게 지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저마다 홀로 견디는 연지/초록이 잠든 자리는 외롭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차가운 이 겨울 외로움을 흔들고 있습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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