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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2-20 오전 9:22:36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바닥에 처박혀 그는 무엇을 하나
말 건네려 해도
손 잡으려 해도 보이지 않네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
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 고개 들지 않네
백 년쯤 지나 다시 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빈 손이라도 잡으려나
그보다 일찍 오면 흰 꽃도 볼 수 있으려나
회산에 회산에 다시 온다면
『사라진 손바닥』(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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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의 「사라진 손바닥」은 겨울 연못을 통한 폐허와 생성, 절망과 희망의 노래입니다.
어느 겨울 시의 화자는 회산이라는 곳에 가서 겨울 연못을 보게 됩니다. 봄·여름·가을 그 넓고 싱싱한 연잎들과 연꽃과 연밥은 다 어디가고 연대궁만 꺾인 채, 초췌한 모습으로 거꾸로 처박혀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연못은 ‘수많은 창을 가슴에 꽂고’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황폐한 연못, 그렇게 싱그럽고 화려하던 세계는 어디가고 황량함과 적막과 허무의 세계만이 그곳에 있는가? 시의 화자는 가까이 가 봅니다. 그-연꽃대궁-은 ‘거꾸로 처박혀’ ‘발밑에 떨어진 밥알들 주워서/진흙 속에 심고 있는지’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 가슴을 탁 치는 이 절망의 대반전 앞에서 독자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밥알이란 연밥 알이겠지요. 한 생을 마친 초라한 꽃대궁의 모습이 갑자기 성자처럼 다가옵니다. 구부려 연밥을 주워 다시 심는 과정이 없다면 연못의 사계절은 없겠지요? 노자의 무위자연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돌연 희망과 풍요의 세계로 반전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허허로운 겨울 연못에서 생명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렇듯 사물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신선함만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님을 우리는 이 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시인님, 시인은 ‘오랜 시일이 지나 다시 온다면 그가 지은 ‘연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의 ‘푸른 손바닥’을 마주 잡을 수 있으려나‘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존재와 부재, 생성과 폐허, 삶과 죽음이라는 이항대립적 세계를 통해 새로운 조화와 화해의 세계를 창조해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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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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