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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09-17 오전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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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 감태준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4-17 오전 9:04:55






철새

                      감태준

 

 

바람에 몇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 오고

겨울 뒤에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 번······"

우리 사는 바닷가 둥지를 돌아보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때,

 

아버지는 바람에 묻혀

날로 조그맣게 멀어져 가고,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는 온몸에 날개를 달고

날개 끝에 무거운 이별을 달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환한 달빛 속

첫눈이 와서 하얗게 누워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내 마음의 한가운데

아직 누구도 날아가지 않은 하늘을 가로질러

우리는 어느새

먹물 속을 날고 있었다

 

"조심해라, 얘야"

앞에 가던 아버지가 먼저 발을 헛딛었다

발 헛딛은 자리,

서울이었다

 

마음이 불어가는 쪽, 현대문학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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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터전을 떠나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서 큰 용기를 전제로 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요.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로 잘 알려진 감태준 시인의 철새또한 우리의 생활 한 부분을 짠하게 합니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 살아보지 않았지만 이제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야할 운명에 처한 아버지. 그 아버지는 이제 한 마리 철새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의 화자 역시 아버지 철새를 따라 터전을 갈아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시의 화자는 아직 어려 모르는 길 앞에서/달려갈 수도/움직일 수도 없는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철새 가족은 온몸에 날개를 달고/날개 끝에 무거운 이별을 달고고향을 등지고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바람에 휘청거린 새가 새로운 곳으로 옮긴들 삶이 그리 녹녹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흰 들판을 가로질러 눈 내리는 초겨울, 먹물 같은 밤하늘을 날아갔지만 아버지 철새는 그곳에서도 발을 헛디디고 말았습니다. , 그곳 발 헛딛은 자리/서울이었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가슴 한 구석을 휑하니 도려내고 있습니다. 서울의 많은 소시민의 모습들이 갑자기 저녁 검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떼처럼 그려집니다. 또 어디로 날아갈 것인가? 이 밤...

 

바람에 뒤집히고, 겨울 뒤에 더 큰 겨울이 오고, 바람에 묻히고, 날개에 이별을 달고, 먹물 속을 날아또 그 어딘가를 향해 날아오를 철새가 떠오릅니다. 고향을 바꾼다는 것은 유전하던 모든 것들과의 이별이며, 전 생애의 절반을 뚝 잘라 바람에 던지는 행위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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