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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5-08 오전 9:16:02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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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1887~1985)은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입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색채가 선명하고 환상적입니다. 비현실적이며 동화적입니다. 특히 <눈 내리는 마을>은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흰색 등의 원색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있으며, 암소와 포도와 사람의 얼굴 등이 다양한 선의 이미지 속에 굵직굵직하게 교직되어 등장합니다. 젖 짜는 여인이 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며, 농부가 걷는 앞에 치마 입은 여자가 거꾸로 하늘에서 날아와 쳐다봅니다. 청동빛 남정네가 소머리 속에 들어 있는 여인을 쳐다보고 있으며 그 아래로 보석 같은 포도가 익어갑니다. 어디로 보나 비현실적이지만 그 어딘가 정감이 가고 친숙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샤갈의 이 <눈 내리는 마을>을 시의 소재로 잡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샤갈의 그림 못지않게 신비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때 아닌 3월에 눈이 내리고, 봄을 기다리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는 푸른 정맥이 떨고,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든다고 노래합니다. 무슨 메시지를 던지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그 이미지에서 고향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중력을 벗어난 신비로운 사랑의 이미지를 감지합니다. 3월에 내리는 눈 속에서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아궁이에 지피고 있다고 하였으니 독자들은 따뜻함을 느낍니다. 주제의 선명함을 좇기보다 이미지와 이미지의 결합으로 빚어지는 묘한 분위기를 통해 시인은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주제를 감추어둡니다. 이러한 시를 김춘수는 무의미시라고 명명했습니다. 지상과 천상, 겨울과 봄, 동물과 사람과 과일, 남자와 여자의 자세 등은 어디 통일된 바가 없지만 그 어딘지 인간의 근원적 심상을 유영하고 있습니다. 시에서도 봄에 눈이 내리고 겨울 열매들이 다시 연초록빛을 발하고 아낙들이 아궁이에 따스한 불을 지펴 봄의 겨울을 녹이고 있습니다. 미완성의 인생처럼 그림과 시는 그런 자체로 남아 우리를 현상을 넘어 초월의 세계로 그리고 봄의 생명성으로 인도합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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