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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09-17 오전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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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 고영민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6-26 오전 7:43:40






이사

                                  고영민

 

고속도로 밀리는 찻길

옆 차선에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트럭에 실려간다

짐칸에 웅크리고 있는 가난한 내외 같다

잔뿌리들은 잘리고

먼저 살던 곳의 흙을 동그랗게 함께 떼어

얼기설기 새끼줄로 묶여 있다

흙이 말라 있다

저 흙도, 잘린 뿌리도 저 나무의 낡은 살림도구다

어디로 옮겨 심어질까

근근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릴까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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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오늘은 고영민 시인의 이사라는 시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트럭에 실려 가는 소나무 두 그루를 통해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이사란 바람의 이동처럼 우리 인간에게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삶의 한 양식입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한두 번 이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몇 년이 멀다 하고 터전을 옮겨 다녀야 하는 삶도 있습니다. 새로운 터전이 더 좋은 곳 더 희망적인 곳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짐칸에 웅크리고 있는 가난한 내외 같은 나무의 삶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잔뿌리들은 잘리고/먼저 살던 곳의 흙을 동그랗게 함께 떼어가는 것이 이사입니다. 두고 가야 할 것들이 있는가 하면 가지고 가야 할 것들도 있지요. 유전하던 것들을 떼어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또 한편 모든 것을 절연하고 떠나지 못하는 것이 이사이기도 합니다. 만약 모든 것을 절연한다면 새로운 삶은 뿌리 없는 삶이 되겠지요. 새로운 삶이 싹트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시인은 저 흙도, 잘린 뿌리도 저 나무의 낡은 살림도구다라고 노래합니다.

 

실려 간 나무가 어느 곳에 심겨 새로운 삶을 영위해가듯이, 이사 가는 내외도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그곳에 정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늦은 저녁밥이지만 지어 먹어야 할 것입니다. -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을까 - 우리는 모두 정착과 이사 속에 갈등하는 운명적인 존재들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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