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1-09-17 오전 11:35:00

  • i 전시관

고독사가 고독에게 / 박소미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7-17 오전 8:52:13






고독사가 고독에게

                                                                                  박소미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지 태아처럼,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진다

 

 

-----------------------------------------------------------------------

 

 

박소미 시인의 고독사가 고독에게202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단번에 쑥 의미가 파악되지는 않지만 시의 분위기와 시적 의미망이 어슴푸레 짐작이 되는 시입니다. 여러 번 읽을수록 어둑어둑한 방안이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라는 첫 행에서, 시적 화자인 는 바로 고독사의 주체인 사망자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는 스스로 자궁으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자궁의 상징적 의미는 모든 생명의 출발, 생명의 근원적 모티프, 존재의 원시성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의 자궁죽음과 연계시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한 생명체의 죽음은 우주적 측면에서 보면 우주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죽음을 맞이한 채 고독하게 죽은 망자의 모습은 어쩌면 웅크린 태아의 모습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생과 부활의 이미지를 언뜻언뜻 비치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막막합니다. 모든 것은 둥근 우주 속으로 환원됩니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가라앉는 그저 칠흑 덩어리같은 점일 뿐입니다. 방은 이미 식어 냉기가 돌고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들어옵니다. 시인은 고독사한 존재의 비정한 모습을 강바닥에 가라앉은 퇴적물’, ‘발굴되지 않는 유적지’, ‘고고학’, ‘화석등의 병치이미지를 통해 고독사의 존재를 감정에 몰입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환기시킵니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현대인들이지만 한편으로 이웃과의 단절 군중 속에서 소외감은 더욱 심해지고, 종국엔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뉴스를 통해 듣고 보게 됩니다.

 

시의 끝부분에서 마지막 떠나면서 남기는 망자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진다-. 여기서 방 안은 그가 거주한 방이지만 이제 우리가 거주할 우리의 세상입니다. 그곳이 점점 어두워진다니요. 산자들을 막막하고 먹먹하게 합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

스팸방지코드
 [새로고침]
※ 상자 안에 있는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0/200
<a href="/black.html">배너클릭체크 노프레임</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