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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론 / 마경덕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7-26 오후 2:07:35






신발론

                                                              마경덕

 

 

2002810

묵은 신발을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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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시인의 신발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복의 의미를 담은 시입니다. 첫째가 주체와 객체의 의미의 전복이며, 둘째는 존재 복원의 전복입니다.

 

첫째, 주체와 객체의 의미의 전복은 2연에서 나타나는데 주체인 신발 주인과 객체인 신발 사이의 전복입니다. 1연에서 신발을 내다버린 주체는 입니다. 그런데 2연에 가면 이것을 뒤집어 객체인 신발이 주체인 나를 버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체인 내가 객체인 그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세상을 주도하며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주체는 어쩌면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한 척의 배에 타고 내리는 것은 나입니다.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너는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는 바로 신발이며, 그 신발에 몸을 맡긴 나의 무게에 신발은 과적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렸습니다. 모든 신발을 보면 하나같이 바깥쪽으로 기울어진 각도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잠시 먹먹하게 하는 명쾌한 직관의 시구입니다. 배의 주인인 내가 선주이면서 짐이었다니! 우리는 모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짐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뒤집어 놓습니다.

 

둘째, 존재 복원의 전복은 마지막 연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라는 시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발은 자신의 책무를 다 한 존재이고 이제 쓸모가 없어져 버려진 존재였지만, 시인은 이를 다시 신발이라는 고유한 존재의 가치를 복원시키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존재를 소유와 필요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성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시인은 모든 존재자들에게서 존재의 거룩함과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자입니다. 존재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영원함을 간직하게 하여 그 각자 고유한 존재의 본질을 다시금 복원시키는 성스러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와 같이 낡고 쓸모가 없어 버려지는 신발이지만 신발이라는 고유하고 거룩한 존재의 발견을 다시금 불러일으킵니다. 마치 고흐의 그림 <한 켤레의 구두>를 대하는 느낌입니다.

 

- 모든 배들이 순항하기를! 선주 또한 짐에서 벗어나기를! -(*)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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