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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 최백규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8-09 오전 8:35:51






치유

                                                    최백규

 

 

일을 하다 가벼이 접질린 너를 업고 돌아왔다 큐브를 맞추다

고개를 끄덕이듯 뭔가 알 것도 같았다

 

골목 끝 책방에는 갑자기 이곳을 떠나게 되어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종이만 붙어져 있었다 그렇게 영영 알 수 없는 일들도 남았다

 

먼 산은 점점 흐릿해지고

 

블라인드를 내리듯

어지러이 널린 술병을 주웠다

 

시뻘건 라면 국물에 즉석밥을 말아 먹으며

지나간 오늘의 운세를 읽으면

해롭고 불안해졌다

 

서서히 뜨거워진다는 발목에 찬 수건을 얹다가

단화 한 켤레를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이라 부르기엔 제법 이르지만

가 보지 않은 마음을 엎질러 어딘가 닿고 싶어져서

 

서로의 살갗에 귀를 대면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 앞으로 하염없이 줄을 선 것 같았다

 

오라는 것은 오지도 않고

열병이나 오려는지 침을 삼키기도 힘든 철이었다

 

또 흉측한 하루를 기다리며 땀을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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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최백규 시인의 치유처럼. 2020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막막한 세상 앞에 선 한 청년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막노동이라도 하다 발을 다친 모양입니다. 집에 돌아와 시뻘건 라면 국물에 즉석밥을 말아 먹으며잘 풀리지 않는 자신의 운세를 점쳐봅니다. ‘지나간 오늘의 운세를 읽으면/해롭고 불안해진다는 말은 다가올 내일에 대한 불안을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운세 역시 좋지 않다고 나왔겠지요.

 

인간의 삶이 운과 의지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은 한 필의 베인지도 모르지만, 창창히 잘 풀리는 사람들은 운보다가는 의지 쪽으로 해석을 하고, 그 반대로 무엇이든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은 자꾸만 운명 쪽으로 추가 기울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지러이 널린 술병’, ‘라면 국물에 즉석밥을 말아 먹으며’, ‘침을 삼키기도 힘든 철등의 구절들을 통해 시의 분위기는 어둡고 암울해집니다. ‘또 흉측한 하루를 기다리며 땀을 말려야 하는 시의 화자의 삶은 절벽 앞에 선 신 앞의 단독자 같습니다.

 

그럼에도 시의 화자는 삶의 큐브를 맞추어봅니다. ‘단화 한 켤레라도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서로의 살갗에 귀를 대롤러코스터같은 삶을 헤쳐 가는 젊은 현대인의 한 군상을 그리며 꾹꾹 눌러 참고 있습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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