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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10-19 오전 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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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 마경덕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08-14 오전 9:39:39






양배추

                                                마경덕

 

 

낱장인, 나를 주장할 수 없었어요

여러 겹이 되기 위해

하얗고 캄캄한 세상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합류하지 못한 몇 장의 바깥은 밭고랑에 버려진다고 했어요

앞과 뒤가 겹쳐 하나로 뭉쳐지고

온전한 이름을 얻었어요

누군가 굴러갈 수 있을 때까지 참으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동그라미는 제가 골몰한 일생이에요

침묵의 크기만큼 어둠도 둥글게 말렸어요

어둠이 찢어지지 않도록 곡선을 만드는 기술은

배운 적은 없지만 잘 알고 있었어요

하얀 어둠을 한 꺼풀 벗겨내면 우묵한 엉덩이가 나타나지요

한 방울의 햇살도 스미지 못한

맑은 어둠의 엉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에 칼날을 들이대지만 않는다면

희고 맑은 엉덩이를

한 장, 한 장 보여 드릴게요

한자리에 눌러앉은

침묵이 얼마나 단단한지 저울에 올려보면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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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시인의 양배추는 질서와 조화, 공동체의 노래로 읽혀집니다. 양배추는 수많은 낱장의 잎들이 둥글게 둥글게 쌓여 하나의 둥근 세계를 이루는 야채입니다. 하나의 낱장으로 사는 순간 한 덩이 양배추에서 이탈해야하고 그때는 밭고랑에 버려지는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양배추가 되기 위해서는 낱장인, 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얗고 캄캄한 세상으로 들어가야합니다. 잎과 잎들이 앞과 뒤가 겹쳐 하나로 뭉쳐질 때, ‘온전한 이름-양배추를 얻습니다. 둥글고 알찬 양배추가 되기 위해 참고 인내하며 침묵해야 합니다. 세상사 많은 일들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양배추라는 사물을 통해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또한 이 시의 매력은 하얀 어둠이라는 역설적인 기교를 통해 삶의 깊이를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어둠은 검은 계통의 색이지만 이 시에서는 하얀 어둠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하얀 거짓말처럼 말입니다. ‘하얀 거짓말이 선의의 거짓말로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듯이, ‘하얀 어둠역시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양배추가 낱장으로 있고자 한다면 밝은 햇살 아래 어둠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 겹이 속속들이 붙어 있다면 햇볕 한 줌 없는 어둠 속에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양배추는 그 누구보다 흰색의 하얀 살을 키웁니다. ‘하얗고 캄캄한 세상에서 자라 맑은 어둠의 엉덩이가 되어 세상을 둥글둥글 굴러갈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희고 맑은 엉덩이를보여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를 읽고 있으면 동글동글한 한 덩이 양배추가 굴러오는 것 같습니다. 양배추의 존재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 따뜻하고 인내의 감동을 선사하는 시입니다.

 

-동그라미는 제가 골몰한 일생이에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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