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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권정생 선생님께) / 안상학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11-27 오전 8:52:15

검정 고무신
- 권정생 선생님께
안상학
살아가기 막막한 날이면
선생님 집 섬돌을 생각합니다.
죽고 싶은 날이면
섬돌 위에 놓인 검정 고무신을 생각합니다.
질긴 인생을 함께 걸어온
그 고무신 한 켤레를 생각합니다.
그래도 앞이 캄캄한 날이면
섬돌 옆 털이 북실한 두데기를 생각합니다.
눈 오는 날 밤새도록 고무신을 품고 있는
그 강아지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문득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 날이면
그 고무신을 훔치고 싶습니다. 도둑고양이처럼
밤늦게 조탑동 외딴집으로 스며들고 싶습니다. 눈 내려
도둑고양이 같은 내 발자국 묻힌 길을
고무신 발자국 남기며 돌아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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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대학 동기생들과 권정생 선생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극히 가난한 삶이었지만 또한 지극히 맑고 순수했던 들꽃 같은 삶이었지요. 마을을 비껴 빌뱅이 언덕 아래 방 한 칸이 전부인 오두막 앞에 서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그 누구도 입이 떨어지지 않나 봅니다. 방문한 때가 한 여름이라 무척 더웠는데 동네 어른들 몇 분이 느티나무 그늘 아래 그분에 대해 조용조용히 몇 마디 해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아마 그분은 이 문제에 대해 그렇게 고민한 적이 없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글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강아지 똥’이 그렇고 ‘몽실언니’가 그렇습니다. 그저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자신의 터전에서 자신의 꽃을 피우다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가난과 병과 사랑과 소박함이 저 들판을 하얗게 물들이는 개망초처럼 일렁입니다.
안상학 시인의 「검정 고무신」을 읽으면 그분의 지극한 삶과 사랑이 다가옵니다. 우리네 인생이 막막하지만 이렇게 막막할 수가 있겠습니까? ‘선생님 집 섬돌’에 떨어지는 달빛은 얼마나 외롭고 새파랬을까 생각해 봅니다. 삶의 절벽 앞에 그분이 신은 ‘검정 고무신’을 떠올리면 다시 신을 수밖에 없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눈 오는 날 밤새도록 고무신을 품고 있는/그 강아지’가 있기에 우리네 삶은 그래도 추운 겨울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어디서 권정생 선생님이 따뜻이 고무신 한 켤레 들고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우리에게 건네는 듯한 착각이 이는 밤입니다. 우리네 삶은 모두 자신의 ‘검정 고무신’ 한 켤레씩을 신고 걸어가야 겠지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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