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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 / 장석남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1-12-11 오전 9:15:27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

                                            장석남

 

어미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준다

막 이삭 피는 보리밭을 핥는 바람

, 저 혓자국!

나는 그곳의 낮아지는 저녁해에

마음을 내어 말린다

 

저만치 바람에

그늘이 시큰대고

무릎이 시큰대고

적산가옥

청춘의 주소 위를 할퀴며

흙탕물의 구름이 지나간다

 

, 마음을 핥는 문밖 마음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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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시인의 시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를 읽고 있으면 자연의 평화스러운 손길이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 참 평온해집니다. 이 시에는 몇 장면이 내 앞에 펼쳐집니다. ‘어미 소가 송아지 등을 핥아 주는 장면’, ‘보리밭을 핥고 지나가는 저녁 바람그리고 저녁 해가 온 천지를 핥고 있는 장면등입니다. ‘핥는다는 것은 자신의 혓바닥으로 상대를 정성스럽게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핥고 지나간 자리는 사랑을 준 이의 혓자국이 남고, 혓자국에 시의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내어 말린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 때에는 해가 떨어지면 집에 들어가기가 바빴지요. 부모님이 찾기도 하고 어둠이 무섭기도 하고요. 그러나 어른이 되면 점점 저물어 가는 저녁 해를 오래오래 바라보는 습관이 일어나지요. 이것을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내어 말린다라고 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나간 세월의 바람이 아련히 가슴을 시큰대게 하고, ‘청춘의 주소 위를 할퀴며 지나간 흙탕물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삶을 돌아봅니다.

 

마지막 구절은 이 시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 마음을 핥는 문밖 마음’ - 자신의 마음을 핥고 지나가는 밖의 아름다움 풍경들, 그 풍경들은 그냥 구경거리인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을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내 밖의 마음들이라는 것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남기고 떠난 집을 말하는 적산가옥(敵産家屋)’이란 시어가 생뚱하여 연결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다음은 이 시에 대한 손택수 시인의 감상평이 좋아 함께 올려봅니다.

 

빨래는 한낮의 따가운 볕에 잘 마르겠지만 마음은 열기가 꺾인 저녁 해라야 더 잘 마른다. 이글대는 불에 마음을 그대로 말렸다간 그을려 까맣게 타버리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같은 불이라도 기울어 사납지 않고 다감한 몽상의 불이다. 이 다감한 불의 이미지가 저녁의 시간대를 부르고 노을빛을 닮은 소를 부른다. 이삭 핀 보리의 따가움이 부드럽게 다가오는 것도 송아지 등을 핥는 어미소가 있어서다. 저녁 해와 어미소와 보리밭을 불어가는 바람이 흙탕물에 핥퀸 마음을 핥아준다. 이 불은 그러니까 '젖은 불'이다. 나는 젖음으로서 마른다는, 고통을 마주함으로써 치유된다는 역설이 이미지의 역동적 힘에 의해 가능해졌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마을을 핥는 문밖 마음'이 있었다는 기억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출처]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 - 장석남 / 감상 손택수 (사랑 숨비소리) |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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