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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10-07 오후 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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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슈퍼 / 고선경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02-05 오전 8:48:17






럭키슈퍼

                             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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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경의 럭키 슈퍼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으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바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시입니다. 그렇지만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으면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아우라가 떠오르면서 이 시의 표현과 그 의미가 깊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오늘날 신춘문예 시들이 가지는 난해성, 실험성에서 그나마 좀 벗어나 있으면서도 낯설게하기 기법을 통한 의미의 다층성과 함축성을 지닌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이 시의 시적 상황을 먼저 살펴보면 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먼저 시적 화자는 지금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나무와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나무에는 많은 열매들이 달려있군요. 열매들은 단순한 과일의 열매가 아니라 시의 화자에게는 하나의 세계들이군요. 그리고 럭키슈퍼의 딸은 자신의 동창으로 지금 어느 대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은 떨어진 낙과처럼 럭키슈퍼 옆 평상에 앉아있고요. 시의 화자는 그곳에서 농담을 떠올리고 떨어진 열매에 대해 생각하고 알맹이와 껍질의 세계를 사유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핵심시어로는 농담’, ‘과일’, ‘씨앗’, ‘럭키(행운)’, ‘껍질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농담이라는 시어는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어렵게 만드는 시어입니다만 한편 매우 깊이 있게 나아가게 하는 시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농담이란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의 의미이잖아요. 농담(弄談)은 농담(濃淡)과 같이 짙음과 옅음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지요. 진담(眞談)이 아니라 남을 가볍게 웃기고 싶어 실없이 던지는 장난기 말이지만 우리는 이 농담 속에 진실과 진리가 들어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시의 첫 행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라는 말은 매우 신선하고 새로운 표현이면서도 그 의미가 깊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내내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게끔 하는 시행이지요. 농담을 껍질을 빼고 과육의 알맹이만 먹는다면 그것은 정말 무미건조한 말이 되겠지요. 잘못하면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농담에서 내적인 진정한 의미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표면상의 표현)의미를 뺀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 되겠지요. 시의 화자는 몇 개의 농담을 던집니다.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등이 시의 화자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농담입니다. 크게 재미있는 농담이 아닙니다만 뼈 있는 농담들이죠.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미루어 짐작하건대 회사에 취직을 하지 못한 젊은이로서 자신은 시에서처럼 떨어져 까마귀나 주워 먹는 낙과 같은 존재이거나 터져 납작해져 입 안에 들어앉은 풍선껌 같은 존재입니다. 이러한 젊은이들이 던지는 앞의 말들은 세상이 농담처럼 우스갯말처럼 들리겠지만 이 말 속에는 사회의 벽 앞에 맞닥뜨린 한 젊은이의 냉엄한 현실 앞에서 고독한 독백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쓸 데 없는 쓰레기가 아니라 그 낙과가 가장 맛있다고, 떨어진 과일도 한 세계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뒤로 갈수록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존재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비록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맨발이면 어떻습니까?’라고, 그리고 시의 화자는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진 자신이지만 땅을 파도 나오지 않는 존재임을 역설하면서 마지막 행에 가서는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라고 툭 던지고 사라집니다. 비록 대기업에 다니는 동창생 아버지가 운영하는 럭키슈퍼에 앉아 떨어지고 납작해지고 보잘것없는 자신이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껍질째 씨앗을 품은 열매로서 다음 세계에게 행운을 던지는 존재로 보는 희망적 노래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제목 럭키슈퍼가 왜 럭키슈퍼인가 고개가 조금 끄덕거려집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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