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전시관
- 글
비단길2 / 강연호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02-26 오전 8:32:13

비단길2
강연호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둥켜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 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숩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현자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
서산대사는 그의 한시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에서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에는/어지러이 함부로 걷지 마라/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국이/?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고 노래하여 내 한 사람의 삶이 자신의 삶에서 끝나지 않음과 바른 삶을 노래하였습니다. 원시인님, 오늘도 길을 따라 하루를 살았습니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면서 평온하기를 그리고 따스하기를 기도하며 걸었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바람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만 걸음걸이는 늘 또 그렇게 바르게 걷는 것만은 아닙니다. 바르게 걷고 싶어도 지나온 길을 돌아다보면 늘 후회와 뉘우침이 함께 합니다.
강연호의 「비단길2」는 우리네 삶의 이러한 단면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또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첫 행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라는 구절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바르고 곧은길을 따라 잘 살기만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나 또한 또 내 마음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때로 그렇게 살지 않으려 했는데 어느덧 마음먹은 길에서 벗어나 있을 때가 많은 것이 인생이지요. 그러나 그 잘못 든 길도 내 인생임에는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멀리 바라보면 그 잘못 든 길이 오히려 나를 더욱 빛나게 할 때도 있음을 가끔씩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면 생각날 때도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삶의 고비 고비를 넘기면서 또 무수한 산맥들이 내 앞에 놓여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강연호 시인은 때로 그 길이 ‘잘 못 든 길’이라 했지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세상에 ‘잘 못 든 길’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모든 삶은 제 길을 간 것이요, 그 길은 나름대로 값진 길이 아닐까요.(*)
-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