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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04-30 오전 7:11:41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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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우리 이럴 때가 있었죠. 영화를 보기 위해 그 캄캄한 공간을 헤매며 자리를 잡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때, 먼저 우리는 모두 일어나 영화 보기 전 거룩한 의식(?)을 거쳐야 했지요. 태극기가 펄럭이고 무궁화가 피고, 새들이 날고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이 떠오르는 온갖 아름다운 화려강산이 펼쳐질 때 경건하게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애국가를 제창했던 시절이 있었죠. 누구도 불만 없이 좀 귀찮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의 조국, 우리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잠시 후면 그 재밌는 영화를 위해서 모두 일어서고 앉았지요.

 

그런데 황지우 시인은 이 극장 의식을 통해 자유와 민주와 절망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5.18 참가자로 군사독재 정권으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한 그에게는 이 의식이 얼마나 가식적으로 다가왔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한반도의 화려강산은 화려강산이 아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름다운 세상일지 몰라도 그 이면에는 독재와 위선과 억압의 더럽고 추악한 나라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들이 저렇듯 날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의 비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자기들의 세상을 떼어 매고 또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시의 화자 역시 우리들도 저 새들처럼 그렇게 자유와 민주의 인권이 살아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꿈속에 젖어봅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모두 제 자리 앉을 수밖에, 아니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각합니다.

 

원시인님, 얼마 있지 않으면 5.18이 다가오는군요. 그 혹독한 세상은 갔지만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또 우리의 조국 안에서도 여전히 자유와 정의와 민주의 참된 의식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세상 너머의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하며, 또 세상 너머 세상을 갈구하고 몸부림칠 줄 알 때 우리는 저 흰 새들처럼 비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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