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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驚異) / 조명희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06-11 오전 9:09:10






경이(驚異)

                                        조명희

 

 

어머님 좀 들어 주서요

저 황혼의 이야기를

숲 사이에 어둠이 엿보아 들고

개천 물소리도 더 한층 가늘어졌나이다.

나무 나무들도 다 기도를 드릴 때입니다.

 

어머니 좀 들어 주서요

손잡고 귀 기울여 주서요

저 담 아래 밤나무에

아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우주가 새 아들 낳았다고 기별합니다.

등불을 켜가지고 오서요

새 손님 맞으러 공손히 걸어가십시다.

 

시집 봄 잔디 밭 우에1924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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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이 시가 1920년대 프로문학의 선구자 조명희의 작품으로 믿기시는지요?

 

조명희 선생은 시와 소설, 수필과 평론 등 다양한 문학 장르를 섭렵하며 당시 고려인문인들을 양성한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8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추풍의 육성촌에 잠시 머물다가 하바로브스크로 와서 중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였으며, 동포 신문인 선봉과 잡지 노력자의 조국의 편집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일제의 농민수탈과 이에 저항하는 지식인 운동가의 삶을 그린 낙동강을 비롯해서, 붉은 깃발 아래에서, 짓밟힌 고려인등이 있습니다. 1937년 가을 어느 날, 스탈린 정부에 체포되어 1938415일에 사형언도를 받고 511일에 총살되었다고 전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구가하다 결국 이념의 희생물이 된 조명희 선생의 경이라는 작품을 읽고 있으면, 그 어디에도 이념의 색채와 맛을 느낄 수 없는 순수하고 경이로운 우주적 신비를 느낍니다. 황혼 무렵, 시인은 자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개천의 물소리도 잔잔해지고 나무들도 서서 기도하는 어둠이 밀려오면 모든 존재들은 숙연해집니다. 그때 밤나무 아람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우주가 새 아들 낳았다고 기별합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어머님) 등불을 켜가지고 오서요 / 새 손님 맞으러 공손히 걸어가십시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우주적 경이로움에 대한 원초적 겸손의 본능이 존재하는가 봅니다. 순수하고 맑은 시인의 정신을 대하는 듯합니다.

 

지금도 우즈베키스탄 타시겐트 동방대학교 한국학부에 한국을 빛낸 문학가’ 4인으로 조명희, 김소월, 이상화, 한용운 선생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일제의 압박과 민족이 처한 현실 앞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다 이념의 희생제물이 되었지만, 그 초심의 세계는 이렇듯 맑고 깨끗하며 숭고하였으리라는 느낌을 주는 시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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