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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송찬호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07-09 오전 7:50:42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이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긴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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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을 저 혀 밑에 감추어두고 어렴풋이 안개 낀 방죽을 걸어가게 합니다. 어딘가 강물은 흐르고 어딘가 한 떼의 새들은 날아가고, 또 어딘가 흐린 하늘은 하고 싶은 말들을 감추어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다 말하지 않는 말. 그것을 찾아가는 일은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마 그것은 의미망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망을 최대한 풀어헤쳐 놓는 작업일 겁니다. 그래야 더 많은 물고기들이 이 그물망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라는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그물망에 들어온 한 마리 물고기의 이야기를 잠깐 나누어 볼까 합니다.

 

이 시는 이미지로서 그 의미를 만들어내는 즉물적인 서술적 이미지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물을 이야기하고자 한 시는 더욱 아닙니다. 그 이미지를 통해 잔잔히 의미를 구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시에 즉물적으로 흐르는 이미지를 나열해 보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시의 화자(아내)는 궁기의 비린내를 감추고 그이 곁에 앉아 달을 본다.

- 그러나 궁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양이처럼 먹을 것을 달라고 핥아댄다.

- 그래서 휘영청 뜬 달의 찬장을 열고 맑은 접시를 꺼내어 고양이(시의 화자)에게 준다.

- 그리고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오늘 저녁엔 너에게 줄 것이라고는 저 흰 달 접시밖에 없다고.

 

아련하고 아린 가난을 이렇게 미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그저 놀랄 일입니다. 이념이나 관념을 최대한 배제시키고, 의미를 구축할 시적 상황만 제시하고 있을 뿐인데, 읽는 이의 가슴은 먹먹하면서도 그렇다고 슬픔에 차 있는 게 아니라 낭만적이어서 더욱 애절합니다.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어쩌면 우리는 이 시구처럼 잔잔히 희고 둥근 것이나 핥으며 자신을 보듬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뾰족한 수가 있나요? 희고 둥근 달처럼 둥근 우주처럼 그저 둥근 것이나 핥으며 희고 둥글어지는 것이지요.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처럼(*)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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