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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고 / 박이문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07-23 오전 7:43:43






하늘이 맑고

                        박이문

 

 

하늘이 맑고

강물이 맑은 것은

그것들의 있음에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를 찾는 있음은

앎과 같아서

우리들의 삶은

푸른 나무와 같지 않다

 

이유가 없는

삶은 푸르고

의미가 없어

꽃은 향기롭다

 

- 박이문 인문학 전집10, 울림의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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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문 시인은 우리시대의 뛰어난 인문학자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남긴 수백 편의 시들은 박이문 인문학 전집10울림의 공백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나비의 꿈>에 실려 있는 위의 시 하늘이 맑고는 그의 시들 중 완성도가 높은 시이며 그의 깊은 사유의 흔적이 녹아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단번에 떠오른 것은 가수 송창식이 부른 <새는>이라는 노래였습니다. 맑고 경쾌한 리듬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새는 노래하는 줄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한다. 새는 날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만 간다. 저기 저어기 저 하늘 끝까지 날아만 가안다(후략)’ 이런 가사인데 송창식 작사 작곡의 노래입니다. 송창식의 그 맑고 청아한 그리고 유장한 음색이 더하여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노래인데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이 노래와 위 시가 매우 닮은 사유의 경지를 가진 노래로 여겼습니다.

 

새는 노래하는 줄도 모르면서 노래하고,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날아가는존재의 무상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듯이, 이 시 역시 이유 없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박이문 시인의 대부분 시가 외로움, 그리움, 삶과 죽음 그리고 허무와 고독의 노래인데 이 노래는 그 통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삶의 깨달음을 우리들에게 명징하고 쉽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이 맑고/강물이 맑은 것은/그것들의 있음에/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은 인간 존재의 일상적인 의식을 넘어선 사유에서 빚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노자의 무위자연의 사유가 깃들어 있기도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은 인간들만이 붙이는 이름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저 돌은 돌대로, 물은 물대로, 새는 새대로 존재하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모든 존재에 이유가 있다고 볼 때 그것은 바로 작위(作爲)이고, 그것들이 이유 없이 존재한다고 할 때는 무위(無爲)의 경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앎에 이르고자 할 때, 즉 존재의 이유를 궁구할 때, 그것은 한 그루 푸른 나무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박이문 시인은 학자로서 존재의 방식을 궁구할 때는 논리적으로 앎(知識)에의 길을 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길은 어쩌면 앎에의 길과는 다른 지(智慧)의 길이므로 그 둘 사이에 무척이나 갈등이 컸으리라는 짐작을 해봅니다. 삶은 앎에 이르러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의 경지에서 한 그루 나무처럼 흘러가는 물처럼 그저 존재의 이유 없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에 이유가 없을 때 그것은 순수이며 진실이며 나아가 진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하여 이유가 없으므로 의미 또한 사라지고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아름다움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이유가 없는

삶은 푸르고

의미가 없어

꽃은 향기롭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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