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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잠 / 김명인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07-30 오전 8:25:44

꽃잠
김명인
운전석 의자를 반쯤 젖혀 놓고
그늘을 모로 꺽은 1톤 트럭의 잠.
행상의 사내 하나
불편한 봄꿈 속으로 내닫고 있다
꽃구경 가자고 졸라 대던
환한 그늘이 펼쳐 놓은 것일까
새벽 장에서 받아 온 1톤의 채소들이
저희끼리 손님을 받을지 말지,
천막을 옆구리로 걷어붙인
주인의 꽃잠 속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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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의 「꽃잠」은 채소 행상을 하는 어느 상인의 사진 한 장면이 떠오르는 쉽고 간명한 시입니다. 어렵지 않아 좋습니다.
봄날 1톤 트럭을 몰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채소를 떼다 파는 행상의 사내는 피곤하여 잠이 들었나 봅니다. ‘운전석 의자를 반쯤 젖혀 놓고’ ‘불편한 봄꿈 속으로 내닫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사내만 잠든 게 아니라 1톤 트럭도 잠이 들었다는 표현이 재밌습니다. 잠으로 이끈 것이 ‘환한 그늘’이라는 표현이 더욱 재밌습니다. 비록 힘든 행상의 노동이지만 고통과 슬픔의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환한 그늘’이라 하여 힘든 삶 속에서도 희망의 내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독자들의 입가에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하는 것은 7~8행에 있습니다. ‘새벽 장에서 받아 온 1톤의 채소들이/저희끼리 손님을 받을지 말지,’라는 대목에 가면 왠지 각박한 삶 속에서도 여유와 배려의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채소들 스스로 손님을 혼자서 받는다거나 아니면 손님들을 돌려보낸다거나 하는 결론이 아니라 머뭇거리는 그 표정이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새벽에 떼 온 채소들은 시들기 전 팔려가야만 하는데 주인은 자고 있고, 깨워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망설이는 채소들의 마음이 잔잔히 젖어 옵니다. 이러한 머뭇거림이 배려의 마음이 아닐까요. 각박함 속에서 배려의 마음을 이렇듯 인간과 사물(채소, 트럭)과의 교감을 통해서도 나타낼 수 있군요. ‘천막을 옆구리로 걷어붙인/주인의 꽃잠 속을 두리번거리’는 채소들 또한 독자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의 잔잔한 매력은 피곤하여 자는 주인의 잠을 ‘단잠’이라 하지 않고 ‘꽃잠’이라고 명명함으로써 더욱 미적 감수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시에는 의미를 가능한 전달하려는 일군의 의미 전달의 시들이 있는가 하면, 의미 전달을 차단하며 그냥 그 장면만을 제시하는 보여주는 시들이 있는데, 이 시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시는 독자들을 배려하여 편안하게 해 줍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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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배웠습니다.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