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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 조창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2-11-05 오전 9:03:11

여백
조창환
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홍시 몇 알
푸른 하늘에서 마른번개를 맞고 있다
새들이 다닌 길은 금세 지워지고
눈부신 적멸만이 바다보다 깊다
저런 기다림은 옥양목 빛이다
이 차갑고 명징한 여백 앞에서는
천사들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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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홍시 몇 알’ 매달려 대롱거리는 가을입니다. 감나무 잎들은 다 떨어지고 감들만 남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 여유와 여백과 풍성함에 젖어듭니다.
조창환 시인은 홍시 몇 알이 그려내는 푸른 가을 하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홍시 몇 알 달랑거리는 그 공간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끔씩 새들이 날아가지만 ‘새들이 다닌 길은 금세 지워’진다는 여백의 진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들이 다닌 길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면 거미줄처럼 얽힌 하늘을 누가 바라볼까요. 다행히도 발자국 없는 새의 길 때문에 하늘은 더욱 투명하고 또 우리들은 맑고 깨끗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시인의 말처럼 ‘눈부신 적멸’의 시공간입니다. 비워있기에 더욱 깊은 알찬 바다, 즉 하늘이라는 공간이지요. 저 하늘의 기다림을 시인은 그 어느 색도 아닌 옥양목 빛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은은한 옥빛,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색깔을 은은히 품은 빛깔, 그것이 하늘의 빛깔인 셈이지요. 그리고 그런 것을 우리는 여백의 미라고 부릅니다.
그 여백의 깊은 심연으로 고요한 몇 알 홍시가 달랑거리고 우리들도 한번 드러누워 봅니다. 옥양목 하늘이 우리를 꽉 채워 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천사들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했던가요. 공空은 없음이 아니요, 색色을 더욱 색이게 해주는 여백이 아닐까요.(*)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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