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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 / 샤를 삐에르 보들레르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3-01-21 오전 7:50:42






알바트로스

                                           
                                         샤를 삐에르 보들레르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바다새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노처럼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항해자,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엾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지지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 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대한 날개 때문에 걷기조차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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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삐에르 보들레르(1821~1867)19세기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이죠. 그가 쓴 악의 꽃(1857)에 실린 이 알바트로스는 자신(시인)의 모습을 거대한 새 알바트로스에 견주어 표현한 시입니다. 알바트로스는 날개가 커서 하늘을 날 때는 무척 아름답고 신비로운 새로 불리지만, 땅 위에서는 뒤뚱뒤뚱 걸어 다녀 바보새라고 불리는 새입니다. 이 새는 곧잘 항해하는 배를 따라 다니는 습성이 있는데, 뱃사람들은 이 새를 잡아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보며 장난을 치고 놀립니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던 알바트로스도 막상 지상에 앉으면, 커다란 흰 날개를 노처럼/가련하게도 질질 끄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이를 보고 얼마나 가엾고 추악한가!’라고 노래하지만 그 속에는 이 알바트로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이 가엾고 추악하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을 보면 이 알바트로스라는 새는 다름 아닌 시인이고, 시인은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이 구름 위의 왕자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거대한 날개 때문에 걷기조차 못하는 알바트로스나 원대한 꿈과 이상을 지닌 시인의 모습이나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장자라는 책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와 바다에 사는 거북이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자신의 세계(우물 안)인 일상의 안락에 빠져 너무 좋으니 너(거북)도 여기 와 즐겨라 하여, 거북이가 작은 우물에 들어갔다가 그 큰 몸이 그만 우물에 끼여 고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바다 거북이는 개구리에게 내가 사는 바다는 아무리 홍수가 나도 넘치지 않고,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어드는 법이 없는 곳이네라고 했더니 개구리가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얼이 빠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시인님, 이 시는 일상의 편함과 안락에만 빠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상과 꿈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상에 유배된 알바트로스’! 그는 우리들에게 지상을 넘어 하늘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대붕(大鵬)입니다. 먹을 것, 즐길 것만 좇는 뱃사람이나 개구리에서, 바다를 누비는 거북이나 대붕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가치로운 것이 되지 않을까요? 비록 그 큰 날개 때문에 지상에서는 퍼덕거릴지 모르지만 일단 한번 비약을 하면 왜 지상이 저렇듯 아름다운지 이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지 새로운 세계가 무한히 펼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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