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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의 강 / 마종기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3-03-11 오전 8:39:52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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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님, 오늘 아침엔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을 읽어봅니다. 어디선가 개울물이 풀어져 물길이 어울리는 우수가 지난 어느 이른 봄날입니다. 강의 시원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강의 시원은 어디선가 시작되고, 그 작은 물줄기는 서로 만나 지금 이 순간 흘러가고 있을 겁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겠지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트여 큰 강물로 출렁거리겠지요. 세상에 아는 사람은 많아도 참으로 좋은 벗은 찾기 어려운 시대. 그리하여 우리는 그 강을 더욱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만 우리는 그 강을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원시인님, 참 벗은 꼭 가까이 있어야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멀리 있어도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서로의 가슴을 덥혀주고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우지요.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으로 내 곁에서 함께 걷습니다. 우리의 강이 서로 하나의 강으로 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서로 잘 압니다. 서로의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하는 일은 달라도 서로의 도달점은 그 어느 지점이라는 걸 서로 잘 압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강은 비로소 큰 강이 되고, 그 강은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지 않음을 압니다.

 

원시인님, 인생의 강에서 좋은 벗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는 시적 화자의 소망은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시인은 말합니다. 죽고 사는 일이 쉽고 가벼운 일인 것처럼. 그러나 정작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이 죽고 사는 일보다 더 무겁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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