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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3 오전 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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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 서안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3-05-20 오전 10:30:26






                     서안나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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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시인의 이라는 작품을 읽고 있으면, ‘라는 존재의 양면적 속성이 떠오릅니다. 표면적인 나와 이면적인 나. 밥을 먹고 사회 활동을 하는 실존적인 나와 나를 지탱해주는 존재론적인 나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등이 가려울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이면서 나는 등 긁기가 쉽지 않습니다. 손을 뻗어도 견갑골 그 어디쯤 나의 등까지 내가 가 닿기는 쉽지 않습니다. 몸을 비틀면 비튼 만큼 또 등은 돌아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등을 긁는다는 것은 등이 보고 싶다는 다른 표현으로도 읽혀집니다. 등은 내 몸의 일부이지만 보고 싶어 몸을 돌리면 돌린 만큼 등은 또 돌아가 버립니다. 등은 내 몸이면서 나를 마주 서 주지 않으니, 마주보고 싶어 등을 돌릴 때마다 등은 그만큼의 거리에서 나를 틀어버립니다. 현실적인 나와 존재론적인 나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거리에 두고 신은 인간을 설계했나 봅니다.

 

시에서처럼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하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고 싶지만,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나의 세상은 재단된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우주처럼 넓은 내가 있는데 우리는 현실에 갇혀 그리운 를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몸부림치는 눈 먼 나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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