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전시관
- 글
저녁눈 / 박용래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3-11-11 오전 10:30:13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한생을 정말 가난하게 살다간 박용래 시인, 그의 「저녁눈」을 읊조리고 있으면 우주적 자비가 이 지상의 가장 변두리에 내려 쌓이는 것 같습니다. 늦은 저녁 무렵 내리는 눈발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붐빕니다. 시에서 ‘붐비다’라고 각 행마다 네 번이나 나오지만 시적 분위기는 전혀 붐비어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붐빔’은 쓸쓸함과 적막을 느끼게 하며, 고요함과 평화스러움을 가져다줍니다. 4행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시에서 어찌 이리 다양한 이미지들이 싹터 날까요? 할 말을 철저하게 이미지 속에 감추어버린 시인의 탁월한 시적 표현력에 우리는 젖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상의 어둠 위에 붐비는 눈발은 마치 천사의 손길처럼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아 따스함마저 느낍니다. 쓸쓸함과 외로움, 적막과 애잔함, 고요함과 평화스러움이 우리의 토속성과 결부되면서 촉촉이 젖게 하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jpg)
.pn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