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전시관
- 글
저 거리의 암자 / 신달자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3-12-02 오전 11:24:00

저 거리의 암자
신달자
어둠 깊어가는 수서역 부근에는
트럭 한 대 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
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함께
출렁출렁 야간 여행을 떠납니다
밤에서 밤까지 주황색 마차는
잡다한 번뇌를 싣고 내리고
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
빗된 농담도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속풀이 국물이 짜글짜글 냄비에서 끓고 있습니다
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
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십니다
젓가락으로 집던 산 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
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내지 못합니다
답답한 것이 산 낙지 뿐입니까
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버린 여자도
서울을 통째로 마시다가 속이 뒤집혀 욕을 게워냅니다
비워진 소주병이 놓인 플라스틱 작은 상이 휘청거립니다
마음도 다리도 휘청거리는 밤거리에서 조금씩 비워지는
잘 익은 감빛 포장마차는 한 채의 묵묵한 암자입니다
새벽이 오면
포장마차 주인은 밤새 지은 암자를 걷어냅니다
손님이나 주인 모두 하룻밤의 수행이 끝났습니다
잠을 설치며 속을 졸이던 대모산의 조바심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데
속을 후려치는 하룻밤이 걸렸습니다
금강경 한 폐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
‘시인의 눈이 가 닿아야 할 곳은 현실인가 이상인가 아니면 그 어느 지평선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가 있습니다. 현실과 이상과 그 지평선이 함께 펼쳐지는 시, 신달자의 「저 거리의 암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의 변두리 수서역 근처 ‘트럭 한 대 분의 하루 노동을’ 씻기 위해 포장마차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시입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지 않는 구석이 없는 삶의 하루가 펼쳐집니다. ‘잡다한 번뇌’와 ‘구슬픈 노래’ 그리고 ‘빗된 농담’들이 ‘속풀이 국물이 짜글짜글 냄비에서 끓고’ 있듯이 포장마차 안에서 끓고 있습니다. ‘해고된 직장’ 이야기가 있으며, ‘단칸방’의 설움도 바람에 펄럭입니다. ‘젓가락으로 집던 산 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이 쓰는 온몸의 문자 역시 이 사회는 외면한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흘러갑니다.
시의 화자는 포장마차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는 노래합니다. ‘조금씩 비워지는/잘 익은 감빛 포장마차는’ 캄캄한 밤 ‘한 채의 묵묵한 암자’라고. 그렇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암자는 소리가 없습니다. 안으로 삼키고 삭여야 하는 시공간, 부처가 입 다물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다독여 삶을 기워나가는 수행만이 있을 뿐입니다. 포장마차를 걷고 포장마차를 치는 하루의 일상, 그것이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힘겨운 ‘금강경 한 페이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금강경 한 폐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jpg)
.pn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