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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시계 안에는 고장 난 시간이 없다 / 민병도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3-12-09 오전 9:37:22

고장 난 시계 안에는 고장 난 시간이 없다
민병도
소풍이 끝났는가 시계가 멈춰 섰다
째깍째깍 함께하던 시간의 간이 숙소
은밀한 나와의 약속,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장 난 시계에는 시간의 흔적이 없다
눈물의 그리움도 숨 막히던 꽃도 지고
솔개가 정지 비행하는 들판처럼 적막하다
제 갈길 물고 날던 흰나비는 어디 갔나
어머니 가신 방에 영정사진 환하지만
고장 난 시계 안에는 고장 난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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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도 시인의 시조 「고장 난 시계 안에는 고장 난 시간이 없다」라는 시를 읽고 있으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이 떠오르고, 나훈아의 「고장 난 벽시계」도 떠오릅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라고 노래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극히 일상성으로 환원시키고 순환하여 생에 영원성을 부여하였습니다. 나훈아의 「고장난 벽시계」에서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라고 노래하여, 늙고 병든 삶을 고장 난 벽시계에 견주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민병도 시인의 「고장 난 시계 안에는 고장 난 시간이 없다」라는 시는 이 둘의 시적 상상력을 일정 부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을 소풍에 비유한 점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고장 난 시계에 견준 점이 그렇습니다.
이 시에서 시의 화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방에 고요히 어머니의 죽음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고장 난 시계가 멈춘 것처럼 어머니의 시간이 모두 멈춰 서 있음을 느낍니다. 하루하루 초침처럼 움직이던 어머니의 삶이 멈추어 있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시적 화자와 어머니의 인연이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무언의 약속은 이제 지켜지지 못한 채, 어머니는 이승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순간 그 아름다웠던 청춘도 눈물 많았던 삶도 그리움도 다 어디 가고, 멈춘 시간만이 적막하게 시적 화자 앞에 놓여 있습니다. 허리 굽혀 고부라진 삶의 길을 날아다니던 흰나비는 어디 가고 어머니의 영정 사진만이 환합니다. ‘고장 난 시계 안에는 고장 난 시간이’ 남아 있어야 할 텐데, ‘고장 난 시간’도 어디 가고 없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극한 슬픔을 이렇듯 담담하게 노래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무상(無相)을 환기시키고, 또 한 번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하는 깊은 사유의 시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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