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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 박숙이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기사입력 2024-05-18 오전 10:10:32

보름달
박숙이
너 하나가 환하니
온 어둠이 환하다
나도 이 집안에
달로 다시 태어나야겠다
대구문학 192호(2024.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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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는 다음과 같이 설파하였다. “그림은 말이 없는 시이며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라고.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품고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만약에 동양의 시인에게 이 물음을 던진다면 어떻게 답할까? 아마 ‘시란 그림의 여백이요 사물의 그림자’라고 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동양화에서 가장 큰 생명은 다 그리지 않고 둔 여백에 있다. 그 여백은 때로 안개일수도 때로 운무일수도 때로 삶이 지향하는 오묘한 길이기도 하다. 시는 다 말하지 않는 말이면서도 말의 핵심을 품고 있는 아우라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는 아무것도 없는 빈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진수를 품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대하고 기억할 때 그 이미지만 최종적으로 남는다는 것을 안다.
박숙이 시인의 「보름달」은 시가 여백이라는 정의에 아주 적합한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둥그렇게 뜬 밤하늘 보름달을 보면서 온 세상이 환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그림에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를 다 빼고 오직 어둠과 밝음의 색채만을 가득히 그리고 있다. 둥근 보름달이 저렇듯 환한 것은 저 보름달 뒤에 둘러싸인 어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너 하나가 환하니/온 어둠이 환하다’는 명구에 이른다. 저 캄캄한 우주도 둥근 보름달로 환하게 빛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의 빛남이 온 어둠을 밝힐 수 있다면 온 몸을 던질 만 하지 않는가. 한국 선시의 느낌, 일본의 하이쿠 맛을 느끼게 한다. 우주의 여백을 밝히는 사물의 정수에 이르는 아름다운 한 편의 시다.
뒤이어 나오는 3,4행 ‘나도 이 집안에/달로 다시 태어나야겠다’ 후반부는 있어도 좋겠지만 어쩌면 여백의 의미를 삭감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우주적 아름다운 시를 방 안에 가두는 느낌을 준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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