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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상엿집’ 10년의 ‘관조’
죽음에서 삶을 성찰하는 생명문화의 ‘백미’ 로 꽃피다!
기사입력 2019-12-24 오후 5:44:42
경산은 ‘생명의 탄생’과 ‘박애의 삶’과 ‘돌아감’이 시공을 초월하여 한자리에 모인
유일한 ‘생명문화의 성지’
시공을 초월하는 생명문화의 대서사로 승화시키는 것은 ‘필연’
경산시 하양읍 해발 575m 무학산 중턱에 기와를 얹은 상여집 하나가 고즈넉하다.
마치 삶과 죽음을 관조하듯 따사로운 햇살에 평화로이 졸고 있다.
10년 전 폐기처분 직전에 구사일생한 이 ‘경산 상엿집’이 죽음에서 삶을 성찰하는 ‘생명문화의 백미’로 꽃피고 있다.
전국의 상엿집들이 쓸모없는 흉물로 인식되어 모두가 헐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당에 ‘경산 상엿집’은 어떻게 ‘생명문화의 백미’ 환생할 수 있었을까? 그 놀라운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상엿집이란, 죽은 사람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타고 가는 요여와 상여 그리고 상례에 사용하는 용구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곳집’, ‘행상집’으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상여를 보면 재수가 좋다거나 새로 만든 상여를 타면 오래 산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으나, 상여집은 왠지 귀신이 붙었다거나 흉물로 인식되어 마을에서 외진 곳에 세워졌고, 외면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근대화로 전통상례문화가 사라지면서 용도조차 없어지자, 마을마다 있던 상엿집들은 모두 허물어지고 사라졌다.
무학산의 ‘경산 상엿집’도 2009년 3월, 포크레인으로 허물기 직전에 극적으로 구조되어 이곳 무학산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건·보전 10년, 그동안 ‘경산 상엿집’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66호’로 지정(2010. 8. 24.)됐고, 전통상례문화 전승·보전의 장으로, 경산 인문학의 산실로 ‘경산의 보물’이 됐다.

▲ 경산 상엿집, 본래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마을 가운데에 있던 것을 2009년 3월 무학산으로 이전했다. 최초 건립은 동네 사람들의 구전에 따르면 지은 지 3백 년쯤 된 것으로 추정된다. 1891년(고종 28년) 중수시의 상량문이 있고 3번 중수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구조와 형태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누각형으로 문짝이 달린 왼쪽과 가운데 2칸은 나무판으로 마감했고, 안쪽 바닥은 우물마루로 꾸몄다.
마루에는 상두꾼 16명씩 총 32명이 드는 대형 상여와 요여(상여에 앞서 가는 작은 가마로 죽은 이의 혼백을 모신다), 상여를 올리는 7m 60㎝짜리 방틀, 방상씨(악귀를 쫒는 가면), 청룡·황룡 용마루를 모셔놓았다.
오른쪽 칸은 들 것, 삽, 망께(무덤터를 다지는 도구) 등 산역 도구와 햇볕을 가리기 위해 치는 차일 등 장례에 필요한 부속품을 보관하는 창고를 배치했다.
일반적인 상여집이 흙벽과 평지바닥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경산 상엿집’은 벽 전체를 목부재를 사용한 판벽으로 마감하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지붕은 기와를 얹어 위엄과 특별함을 갖추었다.
또한 이 상여집에서는 마을에서 상여계를 운영한 기록문서(14종 19점)와 상례물품 250점이 발견되었는데, 상여계의 실제 운영 모습, 마을 공동체의 풍속, 촌락의 사회경제 활동을 보여준다.
경산 상엿집은 완벽한 원형보존과 국내 최대규모로 민속학적, 건축학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문화재청은 2010년 8월 24일 ‘경산 상엿집과 관련문서를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266호」로 지정했다.
◆ 경산 상엿집을 지키며 생명문화로 가꾸는 사람들
경산 상엿집이 보전되고 생명문화의 산실로 꽃피울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두 선각자의 혜안과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
‘나라얼연구소’ 조원경 이사장(하양 무학로교회 담임목사)과 황영례 소장이 그 주인공인데. 두 사람은 영남대학교 동양철학 박사학위 1년 선·후배사이로 2002년부터 (사)나라얼연구소(당초 명칭은 국학연구소)를 개설하여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구와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을 해오고 있다.
특히, 2009년 상엿집 이전 이후부터 전통상례문화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6차례나 개최했고, 그때마다 한국 전통상례를 시연하여 전통상례 전승의 맥을 잇고 있다. 또한 2007년부터 열어오던 140여 차례의 인문학 강좌를 경산 상엿집에서 주로 개최함으로써 ’경산 상엿집‘을 세계 석학들이 주목하는 생명문화를 꽃피우는 인문학의 산실로 만들었다.
두 사람으로 부터 ‘경산 상엿집’이 가치와 남은 이야기를 들었다.
◆ 조원경 이사장이 말하는 경산 상엿집의 가치

▲ 경산상엿집에서 강연 중인 조원경 이사장
조 이사장이 사흘만 지나면 포클레인으로 밀어버릴 처지의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상엿집을 자비로 구입해 극적으로 무학산으로 이전한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됐다. 남들은 다 없애버리는 상엿집을 살려낸 내막이 궁금했다.
“그러니까 10년 전이네요. 영천시 골동품점에서 고문서를 찾던 중 우연히 자천 출신 골동품 장사를 만났는데, 그로부터 자천리에 아주 좋은 상여집이 있는데 대학 박물관에 팔려고 했으나 사려는 곳이 없어 3일 후에 포크레인으로 헐어버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가봤더니 상여집이 정말 웅장하고 멋졌어요. 정자처럼 기도하고 공부하는 곳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길로 새마을금고에서 300만원을 대출받아 동네에 넣어 드리고 상여집을 품게 되었습니다.
옮기는 과정에서도 돈을 아끼려고 기와, 서까래를 걷어낸 뒤 대형 크레인과 트레일러를 동원해 건물 본체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에 총 2천만 원 가량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문화재위원이 해체했으면 문화재가 안 된다고 했으니 돈 없었던 것이 상엿집을 살린 것입니다. 하늘과 조상이 도우신 거죠.
특히 작대기 하나, 기와 한 장도 그대로 옮기려 하다 보니 이전과정에 여러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여 관련 물품과 문서 등 250여 점에 달하는 귀한 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 후 도지정문화재인 상엿집과 비교해보니 우리 상엿집이 월등했습니다. 그래서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자천리 이장님과 주민들 그리고 인연을 맺어준 골동품장사까지 모두 이 상엿집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10년, 경산 상엿집을 모티브로 인문학과 생명문화의 꽃 피울 수 있었던 상여집의 가치를 물었다.
“ 오늘날 사라짐에 대한 의미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들숨과 날숨이 같이 되어야 살 수 있듯이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습니다. 삶에 죽음이 없다면 맹목적인 삶이 되겠지요. 인간이 돈의 주체가 되어야 되는데 돈의 노예가 되는 것처럼...
잘 살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죽음의 세계, 죽음을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유형적으로 보여 주는 유일한 자산이 상엿집입니다.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인간 세상과 초월적 세계를 연결해주는 존재)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불선의 사상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무학산 상엿집에 오면 굉장히 좋아합니다. 한국의 전통 상례문화를 다 볼 수 있습니다.”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는 바다가 궁금하지만, 바다를 벗어나 허공에 솟아야만 바다를 볼 수 있듯이, 죽어야만 알 수 있는 죽음의 세계를 생전에 생각하게 하는 ‘보물’이라는 뜻이리라.
◆ 어떻게 꽃 피울까?
▲ 나라얼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상여를 돌보고 있는 황영례 소장
2002년부터 나라얼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특히 2011년 부터는 매년 전통장례를 시연하여 전통 장례문화의 전승과 보전에 힘쓰고, 2014년부터는 매년 전통장례문화에 대한 국제학술대회를 열어오고 있는 황영례 소장은 “한국의 전통장례문화는 한국의 정신문화와 생명문화의 ‘백미’이고 상엿집은 그 정신과 실체를 고스란히 보전한 소중한 문화자산이다.”며 “상여집과 전통상례문화를 생명존중의 교육장이자 쉼터, 나아가 국제적인 생명테마파크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옆집에서 누가 죽어가는 지도 모르고, 죽고 사는 문제를 보여주어야 겨우 감동하는 이 시대에 죽음에 대해 바둥거리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 이웃의 소중함, 생명의 존귀함을 체험시키고 가르치는 교육·체험센터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상여메기, 회다지 등은 체험테마로, 상두소리, 상여행렬 등은 공연예술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관광 상품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 이사장은 인류의 생명문화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세계적인 센터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한다.
마침, 경산시는 경산상엿집을 중심으로 전통상례문화를 체험하고, 전통문화를 계승·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한국전통 민속테마공원 조성’사업을 계획하고 2020년부터 기본 및 실시설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두 선각자의 경산상엿집 10년의 관조(觀照)가 생명문화의 백미(白眉)로 꽃필 차례다.
◆ 생명문화의 ‘성지’ 경산의 대서사(大徐事)를 펼쳤으면...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다...”고 노래한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죽음을 ‘돌아간다’라고 표현한다.
석학 이어령 선생은 “죽음은 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과거의 탄생을 파고들면 미래의 죽음을 만날 수 있다.”며 “자신의 존재는 36억 년 전 원시의 바닷가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즉 “죽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죽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앎으로써 죽음을 깨닫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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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양읍 금락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정에 우뚝 솟은 스트로마톨라이트(천연기념물 제512호)
10개 대학 12만 명의 청춘이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가는 대학도시 경산, 그 캠퍼스 한가운데 36억 년 전 원시의 바닷가에서 생명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거대한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불쑥 솟아났다. 그 캠퍼스를 품은 무학산 중턱에는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경산 상엿집’이 떡하니 자리 잡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곳 경산은 1400년 전 삼국환란의 고통에 시달리는 민중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유학도 출세도 포기하고 일생을 박애의 무애행(無碍行)으로 사신 원효성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경산은 생명의 탄생과 박애의 삶과 돌아감이 시공을 초월하여 한자리에 모인 유일한 생명문화의 성지이다.
이제 시공을 초월하는 생명문화의 대서사로 승화시키는 필연이 남았다.

▲ 나라열연구소 주관으로 시연한 전통장례 시연(2019년 하양읍 시내)

▲ 2018년 경산 상엿집

▲ 2018년 경산 상엿집

▲ 나라얼연구소가 소장한 상여와 꼭두의 아름다움(사진제공, 나라얼연구소)





최상룡 (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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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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