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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09-23 오후 6:21:00

‘외로움은 무엇으로 치유되는가’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19-09-06 오전 8:49:59





강의하러 이동할 때는 주로 기차를 이용한다. 기차 안에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일가, 혼자여서 심심해서일까, 기차 안에서는 스마트폰의 유혹을 더 느낀다.

 

언젠가 기차로 이동하는 중에 언니와 카톡을 주고받다가 그 속에 빠지고 말았다. 카톡이 끝난는데도 연이어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사실 나는 기차에서 책을 읽을 때 가장 집중이 잘 되는데…… 그래서 읽을 책도 챙겨왔는데…….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대니얼 액스트(Daniel Akst)자기절제사회에서 외로움이 자기절제를 약화시킨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혼자 있을 때 스마트폰과 안터넷의 유혹을 더 느꼈던 것 같다.

 

잘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일 때,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다 그가 잠깐 자리를 비워 혼자 남겨질 때, 이렇게 나 혼자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야 할 때, 그 잠깐의 홀로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게 한다. 스마트폰을 보는 그 자체보다, 스마트폰을 하지 않으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문제다.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외로움은 심심함으로 오기도 하고, 지루함과 무기력함으로 오기도 하며, 불안과 초조한 감정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이럴 때 스마트폰은 외로운 나를 잊게 하는 강력한 도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장시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나면 마음은 더 외롭고 허해진다. 외로움은 스마트폰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혼자 있을 때면 스마트폰의 유혹을 느낀다. 왜냐하면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어쩌면 우리는 외로움을 무엇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외로움은 무엇으로 치유되는지 잘 몰라서 편하고 익숙한 스마트폰에 자꾸 의존하는 것은 아닐까? 알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이 외로움이 치유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잘 몰라서 말이다.

 

외로움과 관련해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경험이 있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영성 공부를 할 때다. 그다지 등반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처음 등산할 때부터 하산할 때까지 기분 좋게 오른 산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오르고 싶어 하는 미국 서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하프 돔이다. 2,698미터 높이에, 눈까지 와서 만만치 않은 코스였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가뿐하고 기분 좋게 등반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방인으로 외국인들과 함께 산행해야 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걸어줄 수 없고, 서로 격려하고 의지할 만한 지인도 없었다. 걷기 수련이라 생각하고 산과 외로움을 친구 삼아 말없이 걷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산행하기 한 달 전부터 매일 저녁 동네를 걷고 위를 걸으며 마음과 몸을 준비해갔다.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어두컴컴한 이른 새벽, 달랑 하나 주어진 샌드위치를 보니 어떻게 견딜까 싶으면서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확실하게 체념한 탓인지 막상 산행을 시작하자 별로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올라갈수록 하얀 눈이 보이면서 길이 점점 더 미끄러웠다. 몇 번이고 넘어지고 또 일어서면서 내가 이토록 굳게 마음먹고 무언가를 해낸 적이 있을까?’ 싶게 열심히 걸었다.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하프 돔 암벽 아래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분명 쉽지 않은 산행이라는 것을 알았고, 누군가 날 도와주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혼자임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마음을 비우고 내맡겼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못한 외로운 현실이 오히려 산행하는데 더 힘을 주었다. 다른 일행이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어울리며 올라가도 나는 내 페이스대로 걸었다. 나 혼자라는 현실이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이 한편으론 좋았다.

 

그날 나는 나 혼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즐길 수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몰려오는 어둠 속에서 가슴 벅찬 행복으로 마음이 꽉 채워짐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는 외로워서 혼자 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인 나 자신과 마주하지 못해서 외로운 것은 아닐까? 외로움은 문득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가 외로움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외로움과 마음의 허기짐은 피할 수도 채울 수도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육체적으로 허기가 진다고 해서 너무 많이 먹으면 속이 편하지 않듯, 그리고 아무리 한 끼에 많은 양을 먹어도 다시 배가 고파지듯, 우리 존재의 외로움과 마음의 허기 역시 꽉 채울 수도, 한번 채운다고 그것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마음의 허기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 본래 외로움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비어 있는 그 생태를 인정하고 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나와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다. 외로움에 홀로 머무는 것은 나 자신을 음미하고 나의 현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아름다운 경험이다. 하느님의 현존도, 이웃의 현존도 반드시 나의 현존을 통과해야 한다. 기도도, 사랑도, 봉사도 모두 나의 영혼과 마음에 담아내야 한다. ‘라는 현존을 충만히 누리지 못하면 이 모든 것은 그저 기능적인 일이 되고, 나는 소외된다. 나 자신의 현존을 얼마큼 마주하고 평온하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외로움은 괴물이기도, 친구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부터 외로움을 연습하고 싶다. 나의 현존 앞에 온전히 마주할 때 오는 좋다라는 느낌, 평온하고 잔잔한 이 느낌을 내려놓고 나 자신과 마주하고 싶다. 조개가 모래를 품으면 진주로 변하듯, 나도 외로움을 그대로 품고 싶다. 외로움은 스마트폰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결 가능하다.






       




 

편집/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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