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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0-02-28 오후 1:45:00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19-12-24 오후 2:44:50





프리랜서로 바쁘고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이를 한 명 알고 있다. 그는 너무 바빠서 여자친구와 만나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하루는 그가 여자친구에게 카톡은 계속 주고받아야 하니 그냥 전화 통화를 하자고 했단다. 그러자 여자친구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냐?”며 화를 내서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말의 내용과 질보다는 계속 주고받아야 하는 형식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SNS 세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말을 멈출 줄 모르는 병적 다변증이라는 수다병까지 생겼다고 하니, 스마트폰으로 인해 발병한 시대적 증상이다.

 

모두가 이렇게 할 말이 많으니 듣지를 못한다. 나 역시 잘 듣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미사 때 강론을 열심히 들은 것 같은데 돌아서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금방 수녀들과 식탁에서 주고받았던 말을 다시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듣지 않는 증상은 함께 살고 있는 수녀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내가 말을 꺼냈다. “칡즙 파는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딱 여기까지 말했는데 한 수녀가 칡즙이요? 그거 갱년기 여성에게 엄청 좋대요.” 그러자 경리 수녀가 수녀님, 칡즙 필요하세요? 사드릴까요?”

슌건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칡즙을 파는 여성에 관한 감동 스토리를 이야기하려고 한건데 한 문장도 채 끝나지 않고 칡즙이란 단어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이 이어졌다. 수녀들도 이 정도면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의사소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화자가 아니라 청자라고 했다. 그런데 SNS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듣기의 본질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다. 말하는 사람만이 말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듣는 사람은 잘 듣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듣기마저도 듣는 사람의 책임이 아닌 말하는 사람의 책임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말을 잘해서 잘 듣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수록 말을 재치 있고 요령 있게 하는 스타 강사, 스타 종교인, 스타 요리사를 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강의를 듣거나 미사에 참례하는 것 조차도 공연을 관람하는 행위와 닮아가고 있다. 재미있어야 하고 지루하면 안된다.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사로잡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적극적인 해석자, 참여자가 아니라 그저 관객이며 구경꾼이 되어버렸다.

 

나도 언제부터인지 못된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 입을 여는 순간, 잘 들어야 할 말인지 그냥 흘려도 될 말인지 머릿속으로 판단하고 있다. 누군가 지루하고 장황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으면 결론부터 말하라고 다그치고 싶어질 정도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 괴로운 것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딴 생각을 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 역시 진정으로 잘 듣기 위해서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듣는 연습을 새롭게 하고 있다. 일단 나 자신을 관찰하는 일부터 연습 중이다. 언제 잡념에 빠지고 잘 듣지 않는지 나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이다.

 

마침 요즘 S 사제의 강론을 집중해서 듣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말도 느리고 게다가 더듬기까지 한다. 일관성 없이 이 말 저 말 할 때도 있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딴 생각에 빠져든다.

 

S 사제의 강론을 집중해서 듣자고 결심을 했지만 결심했다고 금방 몰입되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앞부분을 듣다가 실패하고, 아예 처음부터 들리지 않는 날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집중해서 들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 사제의 말을 속으로 따라 해보았다.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대로 우리는 사랑 해야 합니다라고 속으로 따라 한다. 혹은 속으로 대화하듯 대답한다. ‘, 저 역시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또 딴생각에 빠져드는 나를 의식한다. 그러면 그런 나를 다시 불러온다.

 

그러던 어느날, S 사제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들릴 뿐만 아니라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말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호흡이 끊길 때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온 힘을 기울여서 단어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고 있을지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전까지는 무관심하게 (심지어 불평하면서) 그의 강의를 들었던 나인데, 간혹 그가 말이 바로 이어지지 않아 더듬거리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그의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한 것인데, 그의 말보다 그의 인격을 마주하게 된 느낌이었다. 그렇구나! 듣기는 말 자체를 넘어, 언어 너머의 존재와의 소통이구나.

 

우리는 어머니 자궁에서 듣기부터 먼저 배웠다. 태아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뇌가 활성화되고 신체 발육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그만큼 듣는다는 것은 인간의 성장과 성숙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듣는다는 것은 나는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이다. 상대의 말에 진정으로 귀 기울일 때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삶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잘 듣는 것은 나는 당신의 삶을 지지합니다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잘 듣다 보면 지루하고 서툰 말 너머 그 사람의 표정이 보이고 마음이 보이는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실감한다. 듣기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임을. 그러니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나는 듣고 싶다. 그것도 아주 잘 듣고 싶다.
















 

 

 

 

편집/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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