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19-12-07 오후 1:59:00

‘내면 아이에게 말 걸기’
[은빛수녀의 사색노트]

기사입력 2019-11-21 오전 8:59:40





어느 날 일상에서 오는 불편하고 외로운 감정을 덮어버리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으로 숨게 되면 상처받기 쉬운 내면의 결핍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라고 강연하는 중이었다. 듣고 있던 로사 씨가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내가 왜 그렇게 버럭 화를 내고 폭력적으로 굴었는지…….”

 

로사 씨의 진솔한 고백이 강의실 분위기를 경건하고 숙연하게 만들었다.

 

로사 씨는 자신이 늘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고 있는데도 원인 모를 우울과 공허함에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날이 많았단다. 로사 씨는 그럴 때마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에 더 집착하듯 매달 렸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은 점점 더 강퍅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질 정도로 내면의 화와 상처는 커져만 갔던 것이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서 아하가 찾아왔다. 자신이 지금 마음이 얼마나 허기지고 아픈지, 내면의 나와 만나지 못해서 얼마나 외로운지, 그런데도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으로 내면의 불편한 감정을 덮기에만 얼마나 급급했던지.

 

우리 모두에게는 아이가 있다. 불안에 떨며 외로움에 굶주린 내면 아이 말이다. 너무 오랜 시간 그 아이의 소리를 외면해 언젠가부터 마음 저 깊숙이 어딘가로 그 아이가 숨어버렸다. 그래서 단번에 만나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계속 허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 감정은 내가 나를 만나야만 해소되는 존재의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왠지 마음속 한구석이 허전하고 공허할 때, 이상하게 불안하고 초조해서 스마트폰으로 달려가고 싶을 때, 지루하고 심심하고 외로워서 텔레비전이나 볼까 싶을 때,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인터넷 검색이나 SNS사이트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고 싶을 때, 그때가 바로 마음속 아이에게 말을 건넬 때다.

 

그럴 때 나는 우선 호흡을 가다듬고 고요한 마음으로 내 내면 아이를 바라본다. 모든 관계는 관심을 가지고 멈춰서 바라보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진짜 아이와 대화하듯 어떤 비난이나 판단 없이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바라던 위로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자.

걱정되니?’ ‘버겁니?’ ‘막막하니?’ ‘지루하니?’ ‘그냥 놀고 싶니?’ 이렇게 나는 내 내면 아이의 상태를 물으면서 내 감정을 고요히 바라본다. 그러면 아이의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저녁은 그냥 실컷 놀 거야!’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워.’

재미가 없어. 난 재미를 느끼고 싶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이러고 있는 내가 싫어.’

 

아이의 이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공감해준다.

 

오늘 밤은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구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구나. 지쳤구나.’

두렵구나. 버겹고 막막하고 걱정이 되는구나.’

지루하구나. 마음이 충전될 즐거움을 맛보고 싶구나.’

오늘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 너를 참을 수 없게 만들었구나.’

한 시간만 하려고 했는데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에 빠진 게 싫구나.’

 

마음 속 아이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해야 할 일을 감당하기 버거운 상태일지도 모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혼자라는 두려움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해야 하는데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괴로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조절에 실패하고 자꾸 도망가고 싶어지고 가벼운 재미를 찾아 충동적으로 행동해버리는 걸 수도 있다.

 

그런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 아이는 더 칭얼거린다. 그러니 아이를 닦달하지 말자. 걱정,버거움, 막막함, 지루함, 두려움, 불안, 초조, 서러움, 슬픔, 고통, 외로움…… 이 모든 감정을 없앨 수는 없다. 다만, 어른인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이런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면 아이를 바라보며 말을 걸고 토닥이고 보듬어주는 것이다.

 

지금 나는 원고를 쓰면서 내일 일정을 생각한다. 순간 스마트폰을 열고 일정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저런, 내가 이 원고를 빨리 끝내고 싶은게로구나.’

나의 욕구는 일정을 확인하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원고 쓰는 것이 힘든 것이다. ‘원고 쓰기 힘들지? 빨리 끝내고 쉬고 싶고 놀고 싶지? 그래 이 장만 끝내고 산책 좀 하고 오자.’ 이렇게 나 자신을 토닥인다.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알아채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서 회피하고 싶고, 나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이 외로움이 버겁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 이걸 알아주기만 해도 나는 지금 여기현실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이 순서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마음에 와닿는 한 부분만 반복해도 좋다. 사람을 사귀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내 마음 속 아이와의 관계맺기도 시간이 걸린다. 매 순간 반복하고 반복하다 보면 어른인 내가 아이인 나를 돌보고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마음 속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때 나는 알게 된다. 내가 나에게 이해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음을. 중요한 것은 내면 아이에게 사랑스럽게말을 건네는 것이다. 내면 아이에게 말을 걸 때는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경쾌하게 하는 게 좋다. 뇌는 우울하고 기운 없이 말을 걸면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약간 오버해도 좋다. 약간 오글거려도 좋다. 한번 해보자. 없던 기운도 나온다. 내 마음 속 아이는 아마도 이런 관심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편집/최상룡(ksinews@hanmail.net)

댓글

스팸방지코드
 [새로고침]
※ 상자 안에 있는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0/200
<a href="/black.html">배너클릭체크 노프레임</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