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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06-15 오후 12:12:00

경산 유학의 연원, 東皐 徐思選
지역에 문풍을 일으켜 경산 유학의 길을 열었다...학술발표회로 선생의 삶과 학문·사상을 재조명

기사입력 2017-09-18 오전 10:15:23

       ▲ 동고 서사선 선생 영정


서사선은 달성인(達城人)이다. 천자(天資)가 영매(英邁)했고, 일찍이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 유학했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스러웠고, 학행(學行)이 있었다. 호가 동고(東皐)이다.” 경산지(慶山誌)에 나오는 동고선생에 대한 기록이다.

 

26세 때 결혼한 후 경산현으로 이거하여 동산(東山, 지금의 중방동) 아래에 집을 짓고 거처하는 방을 동고정사(東皐精舍)라 편액하고 경산 자인 일대의 유학을 본격적으로 열었던 동고 서사선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학술발표회가 지난 15일 경산시립박물관에서 열렸다.
 

       ▲ 동고 서사선 선생 학술발표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는 최영조 시장.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회장 이재춘)가 주최한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200석 규모의 강당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지역 유림 및 문화계 인사들로 성황을 이뤘다.

 

동고선생의 삶과 사상을 발표한 계명대 홍원식교수는 동고 서사선 선생은 고대 경산의 삼성현(원효, 설총, 일연)이후 처음으로 경산지역에 문풍을 일으켜 경산지역 유학의 길을 열었다라며 경산에서 동고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재조명하는 의의를 설명했다.

 

학술발표회를 개최한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이재춘 회장을 비롯하여 내빈으로 참석한 최영조 경산시장과 최덕수 경산시의회 의장은 인사말과 축사를 통하여 서사선 선생은 도의(道義)를 지키며 교화(敎化)에 힘쓴 참선비임을 강조하고, 선생의 품행과 학행 그리고 우국충정을 계승하는데 힘쓰자고 말했다.

 

인사말과 주제 발표자들의 발표내용 중 주요 부문을 발췌하여 정리한다.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이재춘 회장 인사말

 

동고선생은 유학자이자 문학가로 8세에 소학을 읽고 사람의 도리가 모두 이 책에 들어 있다.”고 할 정도로 총명하였으며, 이후 한강선생의 문하에 가르침을 받고 학문에 힘써 선생의 도의에 바탕한 학행은 경산사림에 높이 추앙되었고 지방 교화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인조반정 후의 공신 포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을 점령하자, 의병을 창기하였고, 난이 평정되자 수집하였던 군량미를 모두 국용으로 바쳤던 선생의 우국충절정신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감화를 준다.

 

선생의 문집 동고선생문집은 경산 지역민의 학문활동,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헌자료이다. 이 학술발표회를 통해 동고선생의 사상과 업적이 재평가되기를 바란다.

 


달성서씨 종친회장 서영택님의 인사말

 

물질은 넘치는데 만족은 없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의 가족제도는 붕괴된 지 오래되었다. 충효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안빈낙도(安貧樂道)란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청빈 속에서 낙도(樂道)의 삶을 살았던 동고선생의 유풍이 되살아나길 바란다.

 


홍원식 교수(계명대) 주제발표 : 동고 서사선의 삶과 사상

 

       ▲ 홍원식 교수

 

< 동고 선생의 삶 >

동고 서사선은 1579(선조 12) 1011일 대구부(大邱府) 남산리에서 태어났고, 1651(효종 2) 717일 경산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뒤 경산현 북면(北面) 노곡(老谷, 현 동구 숙천동)에 묻혔다. 사후 135년이 지난 1786(정종 10) 향리의 옥천서원(현 옥천서당, 경산시 중방동)에 배향되었다.

 

그는 일찍이 종형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1550~1615)에게서 배운 뒤 다시 성주의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문하에 나아가 퇴계학맥을 이어받았으며, 잠시 천거로 관직에 나아갔을 뿐 평생을 처사로 대구와 경산지역에 살면서 이 지역의 유학계를 대표하였다.

 

그를 통해 17세기 전반 대구를 중심으로 한 낙중(洛中, 낙동강 중류) 지역의 유학계를 잘 살펴볼 수 있으며, 또한 향촌에 기반을 둔 영남 남인들 삶의 한 전형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동고 선생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청소년기에 임진왜란으로 양친을 모두 여의고 46세에는 이괄이 난을 일으켜 창의하였으나, 역적의 형세를 과장하였다는 오해를 받아 자명소(自明疏)를 올려야 했다. 49세에는 정묘호란이 일어나 손처눌과 함께 병졸을 훈련시키며 창의를 도모하기도 했다. 동고 선생은 이처럼 험난한 시대를 살았다. 개인적으로도 사마시는 합격하였으나 회시(會試)는 연거푸 낙방하였다. 어릴 때부터 지병인 습병(濕病)이 있어 겨울이 되면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 그는 스스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철학사상 >

동고선생은 계동 전경창 낙재 서사원 한강 정구의 학맥을 통해 퇴계학을 이어받았다. 퇴계의 후예들은 공·맹이 이미 대도(大道)를 밝혔고, 이어 주자와 퇴계가 그 세밀한 뜻을 모두 밝혔으므로 굳이 성리학에 관한 이론적 저술이 필요치 않다고 보고 도학적 실천을 중시했다.

 

퇴계의 후예들은 심경심경부주(心經은 중국 南宋眞德秀가 마음공부의 내용을 가려 뽑아 편찬한 책이고, 心經附註程敏政이 심경에다 후대의 내용을 부가하여 편찬한 책)를 학맥전승의 주요 징표로 삼았다.

 

낙재가 동고에게 사문을 부탁하며 전한 책이 바로 심경(부주)이다. 따라서 심경은 퇴계에서 계동, 낙재, 동고로 전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심경심경부주는 성리학적 마음공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운 유학으로서 성리학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통해 스스로 성현(聖賢)이 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점에서 성리학은 스스로 성현 됨을 기약하는 성학(聖學)이다.

 

동고선생과 그 행렬은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현인(賢人)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현인의 표상인 안빈낙도(安貧樂道)로 유명한 공자의 수제자 안회(顔回)의 언행을 쫓아 현인에 이른 뒤 궁극적으로 성인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였다.

 

동고가 지은 홍로점설(紅爐點雪)의 첫 구절은 화로불에 한 점 눈 녹이듯 사욕을 이겨 현인이 된 안자를 칭송하며 그 길을 따르고자 하는 동고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글거리는 화로보다 뜨거운 것이 없고

한점의 눈보다 작은 것이 없네.

작고 작은 눈송이 뜨거운 화로에 넣으면

어찌 일순간에 사라지지 않으리.

사물이 그러하듯 이 같은 분 계셨으니

지극하도다! 안자의 사욕을 이김이여.

  • ,국역동고선생문집1, , 홍로점설(紅爐點雪)

 

또한 사욕 끊기가 어려움을 부()로 읊기도 했다.

 

대게 듣건대

뿌리가 이는 물건은

외물과 접촉하면 반드시 발동하니

물건이 모두 그렇거니와

마음은 더욱 심하다네.

어렵도다 기질을 변화시킴이여

듣건대 사냥하는 것을 보고 기쁨이 일어나자

좋아한 구습이 잠복해 있었음을 탄식했나니

선생께서 정밀히 살피지 않았다면

어찌 이 마음을 막을 수 있었으리.

  • 국역동고선생문집1, , 사냥하는 것을 보고 다시 기쁜 마음이 일어나다

 

그는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한 뒤 뒤늦은 46세 때에도 성균관에 유학하였으며, 천거로 예빈시 참봉을 지냈지만 여전히 대과급제를 열망하여 64세 때에도 응시했다가 낙방하였다. 과거에 낙방한 뒤 돌아와 초당에 누워 욕망을 쓸어내리며 호호가(浩浩歌) 절구를 읊었다.

 

아득한 옛날 소년시절에는

오늘의 늙음을 생각지 못했네.

한번 늙고 나니 능한 일 없고

돌아와서 호호가를 부르네

  • 국역동고선생문집1, ,임오년 봄 과거에 낙방 뒤 돌아와 초당에 누워 절구를 읊다

 

이렇듯 동고선생은 성현이 되는 공부는 오로지 마음공부에 달려있고, 마음공부는 천리를 간직하고 인욕을 없애는데 달려 있으며(存天理去人欲), ()을 통해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효과적이다라는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받들어 묵묵히 실행하였다.

 

또한 성현의 도가 중용에 있으며, 중용의 도를 따르는 것이 바로 성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요, 이를 통해 성현에 이르고자 한 도학자의 모습을 젊은 날 중용을 읽고서 그가 읊은 시에서 볼 수 있다.

 

고명한 사람 허무(虛無)에 빠짐을 일찍이 탄식하고

비루한 사람 용혈함에 흐름을 깊이 탄식하네.

오색 물감에 실이 물듦을 묵적이 슬퍼했고

미로에서 갈팡질팡하니 어디로 따라갈까.

오늘 아침 미발서(未發書)를 받아 읽으니

비로소 우리의 도는 중용임을 알겠네.

......

처음에는 성명(性命)을 말하며 본연을 가리켰고

중간에는 천인(天人)을 말하며 길흉을 밝혔네.

편의 끝에 다시 상경시(尙絅時)를 보탰으니

간곡하게 경계한 뜻 이렇게도 중후한가.

천만 마디 말씀 하나로 관통하니

불편불의(不偏不倚)하게 성현의 발자취를 따름일세.

  • 국역동고선생문집3, , 중용을 읽고

 

 

정우락 교수(경북대) 주제발표 : 동고 시문학의 상상력과 의미 구조
 

       ▲ 정우락 교수
 

< 동고 시문학의 상상력 >

 

동고선생의 시문학에는 다양한 공간 상상력이 나타난다.

 

동고정사에서는 천명에 순응하며 천리를 함께 하고자 했고, 금호강과 그 연안에서는 도통의 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다. 그리고 연경서원과 고산서당에서는 정구나 전경창 등에게 제향(祭香)을 올리거나, 학술 강론을 벌이면서 선비들과 교유의 장을 펼쳤으며, 소유정에서는 선대로부터 이어지는 채선길과의 세의(世誼, 한 가문이 다른 가문과 대대로 사귀어 오는 정의)를 느끼며 주위 산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안흥사에서는 거기에 있는 수기암에 올라 근심을 떨쳐버리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문학경관에 따른 공간 상상력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동고선생이 인간 세상의 별천지라고 한 소유정에서 채선길과 세의를 느끼며 주변의 자연에 몰입한 정서를 담은 시 두 수와 근심을 버리는 수기암(愁棄巖)이 있는 안흥사(동고선생 在世시는 남천면 협석리에 있었다고 알려진다. 현재는 경산시 상방동에 있다)에서 지은 제수기암(題愁棄巖) 한 수를 옮긴다

 

몇 해 동안 땅을 찾고 또 하늘을 찾아

인간 세상에 이 같은 별천지 얻었네

천지의 분명함을 내가 보고 또 보았나니

하늘로 돌아간 후엔 적료하다는 것을 알겠네

- 東皐集 卷1, 所有亭次蔡吉仲韻

 

 

나의 삶은 인간의 부유함을 원하지 않고

나의 삶은 인간의 귀함도 원치를 않네

인간의 부귀는 모두 부럽지 않고

그대 강산의 맑은 부귀가 부럽다네.

- 東皐集 卷1, 所有狎鷺亭韻

 

 

술 취하면 곧 잊지만 깨고나면 근심

세상 어디에서 근심을 풀 것인가

우뚝한 바위 있어 수기라 이름하였으니

이곳으로 옮겨 살며 모든 근심 잊고 싶네

 

얻음과 잃음 궁함과 통함이 모두 근심이니

장부는 천명이 편안해야 절로 근심이 없어진다네

덧없는 인생 가는 곳마다 술을 마시나니

수기암인들 근심 없는 나를 어떻게 하리

- 東皐集 卷1, 題愁棄巖

 

< 동고 시문학의 의미구조 >

 

동고선생의 시문학의 공간 상상력과 이에 따른 의미구조는 자아, 인간, 자연, 학문이라는 네 개념으로 구조화 할 수 있다.

 

그는 자아의 내적 수렴을 통해 安分하는 자세를 지니고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자 했다. 외적 확산은 인간과 자연을 통해 이루어 졌다.

 

인간에 대해서는 상호간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스승과 벗, 그리고 제자들과의 학문적 교유를 통해 그 관계를 온전하게 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연은 중요한 문학경관을 제공하는 바 유람을 통해 자신의 흥취를 펴고자 했다.

 

유가 학문이 수기와 치인으로 요약되듯이, 그는 存天理 渴人欲(존천리 갈인욕 : 인욕을 끊고 천리인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복귀함)을 의식하면서 자신을 수양하고자 했고, 겸양을 통해 공동체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이것은 상호 소통성을 강조한 것으로 동고선생의 시문학의 의미구조는 자아와 사물의 소통론적 관계망 속에 구축되어 있다.

 

모든 운을 으로 사용하여 천명의 중요성을 드러내고 천명을 따른다는 청천장음(廳天長吟)의 일부와 안분음(安分吟) 칠언절구를 들어본다.

 

무릇 사람이 욕심을 내는 것은

모두 하늘을 알지 못함일세

처음 태어날 때 분수가 정해졌나니

혹여라도 어찌 하늘을 원망하리

나는 늙어서도 굶주리지 않으니

이미 하늘에서 얻은 것이 많다네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

한결같이 푸른 하늘의 명을 들으리

- 東皐集 卷3, 廳天長吟

 

육십년 세월 동안 무슨 일을 했는가

힌머리 눈과 같고 귀밑머리 힌 실 같네

死生窮達(궁달)이란 모두 하늘에서 부여된 것

다만 편한 마음으로 순하게 받아들일 뿐

- 東皐集 卷1, 安分吟

 

정병호 교수(경북대) 주제발표 : 동고 서사선의 挽詞에 대하여
 

       ▲ 정병호 교수
 

 

挽詞挽詩는 망자에 대한 애도를 표명하기 위해 짓는 양식으로 대체로 요청에 의해 짓지만 자발적으로 짓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만사는 애도와 칭송이 담겨있다.

 

동고의 만사에 나타난 의식은 師友에 대한 칭송과 同道意識, 살아남은 자의 비애와 虛無意識, 망자에 대한 추억과 追募意識이다.

 

또한 동고 선생의 만사는 쉽고 깊은 서정을 담고 있어 연구할 가치가 매우 높다.

 

동고선생문집3에는 만사 5990가 수록되어 있다. 그 첫머리에 수록된 만사가 스승 寒岡 鄭逑(1543~1620)의 부음을 듣고 쓴寒岡先生挽詞이다. 스승에 대한 제자의 각별한 마음이 담겨있다.

 

! 하늘이 우리 선생을 우뚝 내시어

陶山의 적통으로 일찍 맹주가 되셨네

繼往開來한 공은 오늘날의 孔孟이고

참으로 알아 실천함은 옛날의 程朱였네

司憲府에서 箚子 올림에 몸은 멀어졌으나

禮說이 완성되자 도가 더욱 형통하였네

자리 위의 춘풍 다시 보기 어려우니

泗水 가의 방초도 종횡으로 눈물짓네


)繼往開來(계왕개래, 옛 성인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서 후세의 학자들에게 가르쳐 전함)

箚子(차자, 조선시대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

程朱(정주, 송나라 유학자 정호, 정이 형제와 주희를 아울러 이르는 말)

禮說(예설, 예절에 관한 학설)

 

동고선생 저서 : 東皐集 63

묘소 : 대구시 동구 숙천동 산 23번지

제향 : 玉川祠(경산시 중방동 852-4)

 

최상룡(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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