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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찬옥의 할리데이비슨 이야기]
할리데이비슨 히스토리1.
기사입력 2007-02-22 오전 10:23:06
할리 데이비슨은 윌리엄 S. 할리(자전거공장 근무)와 아더 데이비슨(철강회사 근무)이 ‘기회의 땅’ 미국 밀워키의 작은 마을에서 목조건물에 ‘할리데이비슨 모터 컴퍼니’ 간판을 걸면서 시작되었고, 그 후 아더의 형제인 월터와 윌리암 A.(1907년)와 함께 회사를 법인화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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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할리데이비슨 코리아 대구지점 백찬옥 과장 |
1901년 167cc로 시작한 할리의 엔진은 곧 이어 405cc로 배기량이 확대되어, 상대적으로 더 강해진 엔진에 버티기 위해 루프 형태의 프레임을 디자인하였다. 카브레터가 장착되었고, 1903년 3대의 모델 생산, 1904년에는 4대가 생산되어 모두 팔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모델들 중 일부는 오늘날에도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1907년 엔진배기량은 440cc로 확대되고 4곳이 차대와 연결되어 안정성을 보다 높였으며, 또한 스프링 프론트 휀더를 장착하였는데 이 스프링 포크는 그 후 46년간 할리에서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1908년에는 모델4로 명명되었고, 이후 단기통(싱글 실린더) 모델은 모델5, 모델6 등의 이름으로 계속적인 개량을 거쳐 모델8에 이르게 되어 ‘silent gray fellow’라는 애칭으로 판매되었으며, 1918년까지 개량은 계속되어 모델18까지 등장하게 된다.
레이스를 위해 태어난 모델 할리 데이비슨 OHV 8밸브 레이서(1915~1921)는 인디안 모터사이클의 8밸브 OHV 엔진 모델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할리가 만든 모델로서 레이스의 제한조건을 만족하기 위하여 배기량은 986cc로 제작하였고, 1916년에는 레이스에 있어 기본이 되는 모델로서의 자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레이서인 만큼 브레이크 따위는 달려있지 않았으며, 두개의 실린더 사이에 카브레터 하나가 달려있다. 1921년 오토워커는 이 모델로 173.4km의 스피드 기록을 갱신하기도 하였다.

▲ 할리데이비슨 OHV 8밸브 레이서
역사의 흐름 속에 할리 데이비슨은 약 20,000여대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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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차 세계대전 참가 |
전쟁에 참가하게 된 원인은 첫째, 할리 데이비슨은 가장 편안하고 내구성 있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전쟁 시, 각 장치는 가장 낙후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고 기동력 있게 만들어져야 하며 날씨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는 등 이런 점에서 그 실용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둘째, 표준화의 필요성이다. 기기뿐만 아니라 공구까지 모든 기술적인 부분의 표준화는 전시에 둘도 없이 중요한 사항이었다. 이 당시에 생산된 모터사이클은 엔진이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간단한 조작의 단순한 3단 기어와 점화장치, 훌륭한 프론트 포크, 그리고 편안한 발판과 두껍고 큰 타이어 등, 장거리 주행에 필요한 요소들을 만족시켜주고 있었다. 이 시기에 군사용 할리 데이비슨이 대량으로 생산되었으며 모터사이클 산업에서 할리 데이비슨은 거대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36년에 할리 데이비슨은 1000cc의 OHV방식의 엔진을 공개한다.

▲ 너클헤드
실린더 헤드 위에 위치하는 로커커버(rocker cover)의 형상이 움켜 쥔 주먹과 같다는 데서 너클헤드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4800rpm에서 40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이전의 플랫헤드 빅트윈 보다 10마력이상이 증가한 수치였다. 특징을 살펴보면, 원심력을 이용한 오일펌프와(기본 컨셉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피드에 따라 작동되는 ‘체크밸브’, 네 개의 캠을 가진 한 개의 캠섀프트를 갖는다. 후에 배기량은 1200cc로 높아진다.
1948년, 이시기에 있어 미국은 전 세계적인 리더로서 자리 잡은 후였다. 2차 대전이 끝났고, 미국은 엔진 디자인에 있어 세계제일을 달리고 있었다. 군용에 주력하였던 할리 데이비슨은 민간으로 눈을 돌리며, 새 엔진을 선보인다. 알루미늄 실린더 헤드를 사용하였으며, 유압식 밸브 리프터가 푸쉬로드의 제일 윗부분에 위치하게 되었다. 엔진 냉각 시스템 역시 개선되었다. 이전에 사용되던 18mm스파크 플러그가 교체되고 14mm 스레드를 갖는 스파크 플러그가 채용되었다. 56년에는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파트이기도 한 태퍼드 롤러 베어링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팬헤드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엔진으로 평가 받았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할리 팬들에게 사랑 받는 엔진이다.

▲ 대구점 오픈하우스 행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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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리데이비슨 투어링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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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진 할리 한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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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리데이비슨 대구지점 찾아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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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음....댄마이 멋찌구만.
삶의 여유가 묻어나는 포스~~~ 멋집니다..
그 옆에 굴국밥집도 끝내줘요 ㅎㅎㅎ
올 여름이 되면 나도 저곳으로 가서.......... 하나 구입해야쥐........ㅋㅋ
캬~~~ 너무 가지고 싶은 바이크들이 많으나....... 넘 비싸서..... 제 차를 팔아도 안 될듯....... 근데 보기만 해도 좋네요
백과장님 할리랑 잘 어울리시네요 오토바이탈때 가죽옷도 입으십니까? ㅋㅋ
듬직하니 넘 중후합니다. 아~ 타고 싶군요
할리의 역사를 알게되서 넘 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