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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퇴계의 學問과 사랑
기사입력 2007-01-28 오전 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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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신 문학 평론가 |
퇴계의 풍류는 낮 퇴계 밤 퇴계란 말로 요약되고 완성된다. 이 말속엔 동양최고 학자의 풍모와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의 냄새가 동시에 묻어있는 멋진 찬사다.
만약 낮 퇴계 밤 퇴계가 같다고 했을 때 늘 푼수 없는 선비의 좁쌀 같은 이미지만 비쳐질 뿐 아무런 매력이나 멋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여인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 낮엔 요조숙녀. 밤엔 요부라는 말에 동의 할 수 있다면 낮 퇴계 밤 퇴계는 이하동문 이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서로 물고 있는 관계여서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는 질문과 비슷하다.
머릿속에 지식깨나 들어있는 식자층은 “그거야 정신이 우위에 있지.”라고 흔히 말한다. 굳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듯 육체를 하대 하고 정신만 높이 사면 거푸집 없이 짓는 건물과 같고 육체를 떠난 정신은 집 없는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시간의 신이 인간에게 백년이란 시간을 주었다. 죽고 나면 정신은 영혼의 신이 육체는 흙의 신이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백 년 동안은 슬픔과 불안의 신이 지배하는 것으로 미리 정해두었다. 참으로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한 이야기다. 너와나 우리 모두는 이 덫에 걸려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정신은 하나님의 영역에 많이 편입되어있고 육체는 인간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가 죽음을 맞는 순간 서로 흡수되고 통합되어 새로운 시작을 향해 행진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신과 육체를 굳이 분리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남녀 간의 육체를 배제한 정신만의만남은 한때 반짝하는 정전기의 발작이거나 그리움의 유혹일 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육체가 경험한 아름다운 기억을 정신이란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은 것이다.
그 기억을 추억할 줄 아는 육체는 능히 정신과 융합하여 불멸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거나 더러는 역사속의 이야기로 남아 오랜 세월동안 인구에 화자 되기도 한다.
퇴계는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벼슬에 연연하지 않은 참다운 선비였다. 그는 근면과 검소로 버텼고 간소한 묘비명만 지식들에게 허락했을 뿐 예를 갖춘 장례까지 마다할 정도였다.
그런 근엄하고 학덕 깊은 학자가 9개월간의 단양군수 시절에 두향(杜香)이란어린 기생을 만나사랑을 하게 되고 생애가 끝나는 순간까지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녔다니 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가.
퇴계나이48세에 18세인 두향을 만났다. 두향은 총명했고 학문과 예술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지 두 해째인데다 매화를 가꾸는 솜씨가 비범한 그녀였으니 매화를 좋아하는 퇴계가 빠져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는 주자학의 거두 주세봉이[대학]을 줄줄 외며 그 이치를 꿰뚫고 있던 탁문 이라는 기생을 항시 옆에 두고 학문과 사랑을 나눴다는 이야기와 궤를 같이한다.
아.. 진정한 사랑을 이 시대에는 찾을 수 없으니 삭막하다.
광양인터넷뉴스 칼럼리스트
문학평론가 이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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